처세시인 153

유사인간

유사인간/방우달(처세시인) * 방우달의 중에서 나는 이 세상에서 유통이 잘 되지 않을 뿐더러 세상을 잘 굴리지도 못하는 족속이다 더구나 유효기간이 얼마인지도 모르는 체 부끄럽게도 잘난 인간이라는 유사상표를 가슴에 버젓이 붙이고 이 세상에 끼어 있다 많고 많은 상품 중에는 잘 팔리는 상품과 잘 팔리지 않는 상품만이 있다고 이 세상 사람들이 말할 때 나는 가장 슬프다 잘 팔리지 않는 상품 중에도 좋은 상품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때 좀 위안이 되지만 사람들은 좋은 상품과 나쁜 상품이 있다고는 잘 말하지 않는다

앙코르 작품 2021.03.02

빈 잔의 내 가슴에

빈 잔의 내 가슴에/방우달(처세시인) * 방우달 시집 중에서 빈 잔 두고 그대는 먼 길 떠나고 빈 잔 앞에 나는 홀로 앉아 그대 그리움 가득 부어 단숨에 마신다네 마신 만큼 취기는 그대 생각에 젖고 비운 만큼 빈 잔은 넓어지고 깊어져 또다시 그 빈 잔을 채우면 먼 길 떠날 때 그 모습으로 허허 웃으며 다가오는 그대 앞에 허트러진 옷매무새 고쳐 앉은 내 가슴의 빈 잔엔 다시 채울 수 없는 그 빈 잔엔 그대 그리움 둥 떠 있네

앙코르 작품 2021.03.01

3 No 세상

3 No 세상 방우달(처세시인) 천국이나 극락이라고 생각하는 세상은 보통 3 No 세상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스트레스 No, 생활고 걱정 No, 생활의 변화 No다. 그러나 이 지상엔 거의 없을 세상이고 있다고 해도 치매 발병률이 높은 세상이라고 한다. 생(生)을 고해(苦海)라고 했듯이 우리의 삶은 빛과 그늘과 어둠을 동시에 즐기며 살아야 한다. 행복과 불행, 고락을 함께 맞이하고 보내는 삶이 인생낙원이리라.

겨울 오후

겨울 오후/방우달(처세시인) -방우달 시집 중에서 숲속을 떠나지 않는 산비둘기처럼 도심을 떠나지 않는 집비둘기 두 마리 둘 다 암컷일까, 수컷일까 또는 한 쌍일까 생각을 따지며 사람이 걷는 차가운 보도블록 위를 뜨겁게 걷고 있다 걷는 길 빈 틈에도 깊은 사랑 심고 정겹게 모이를 함께 쪼으며 활자를 등에 싣고 신문지 한 장 보도블록에 박혀 펄럭이는 겨울 오후.

앙코르 작품 2021.02.23

삶은 한 잔 술에 안겨 익살을 부리고

삶은 한 잔 술에 안겨 익살을 부리고 설날에 가만히 생각해 보았네. 지난 30여 년간 왜 그렇게 많이 마셨는가, 삶에 대한 불만이나 축배가 아니었다. 낭만도 아니었다. 술을 마시는 이유는 의외로 단순했다. 숨 막힐 듯 막힐 듯 꽉 찬 삶을 비워서 빈병을 만드는 재미가 수월찮게 있었고 가엾게 여겨질 정도로 비워버린 잔을 채워주는 재미가 제법 솔솔 났기 때문. 그냥, 있으면 비우고 비워지면 채우는 것이 삶이어서 그 재미가 없었다면 어찌 여기까지 왔겠나.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비우고 채우고 채우고 비우고 하는 사이 내장이 허물어지 듯 삶은 허물허물 꿈은 술잔 속에서 맘껏 부풀어 올랐더라. 삶은 오늘도 한 잔 술에 안겨 익살부리네. - 처세시인 방우달의 《절》 중에서 - 술을 마시는데 이유가 있을까요? 술이 좋..

앙코르 작품 2021.02.23

난감한 친절 전단지

난감한 친절 전단지 방우달(처세시인) "죄송합니다, 차주님. 허락없이 쪽지를 남깁니다. 저의 바이어가 선생님 차를 사고 싶어합니다. 차량 판매를 생각하고 계신다면 언제라도 연락주세요. 바로 찾아뵙겠습니다. 중고차 수출전문기업 00오토 문의 전화 010-000-0000" 내가 사는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주차된 나의 애마에 꽂혀 있는 쪽지 내용이다. 노후 중고차 전국 최고가 매입 회사, 전액 당일 현금 지급, 연식이 오래된 차량, 주행거리가 많은 차량을 구입, 깔끔한 서류 정리 및 말소를 해주겠다는 친절한 전단지다. 골동품 같은 내 애마는 1996년 산이다. 새 차로 뽑아 26년 된 나의 첫 승용차다. 가끔 꽂혀 있는 이런 전단지를 볼 때마다 참 묘한 생각이 든다. 나의 애마가 아니라 연식이 오래된 내게 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