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코르 작품

삶은 한 잔 술에 안겨 익살을 부리고

野塔 방우달 시인 2021. 2. 23. 00:48

삶은 한 잔 술에 안겨 익살을 부리고

 

설날에 가만히 생각해 보았네.
지난 30여 년간 왜 그렇게 많이 마셨는가,
삶에 대한 불만이나 축배가 아니었다.
낭만도 아니었다.
술을 마시는 이유는 의외로 단순했다.
숨 막힐 듯 막힐 듯 꽉 찬 삶을 비워서
빈병을 만드는 재미가 수월찮게 있었고
가엾게 여겨질 정도로 비워버린 잔을
채워주는 재미가 제법 솔솔 났기 때문.
그냥, 있으면 비우고
비워지면 채우는 것이 삶이어서
그 재미가 없었다면 어찌 여기까지 왔겠나.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비우고 채우고 채우고 비우고 하는 사이
내장이 허물어지 듯 삶은 허물허물
꿈은 술잔 속에서 맘껏 부풀어 올랐더라.
삶은 오늘도 한 잔 술에 안겨 익살부리네.


- 처세시인 방우달의 《절》 중에서 -

술을 마시는데
이유가 있을까요? 술이
좋아서 마시고 만남이 좋아서 마시고
기뻐서 마시고 슬프서 마시고 분위기에 취해서
마시고 흔들려서 마시고 술이 술을 마시고
잔을 비우기 위해서 마시고 잔을 채우기
위해서 마시고 마시는 재미로 마시고
이유 없는 무덤 없듯이 이유 없는
술 마시기는 없을 듯 합니다,
삶이 익살을 부리는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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