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코르 작품

설경, 녹지 않는

野塔 방우달 시인 2021. 2. 19. 09:36

설경, 녹지 않는/방우달(처세시인)

* 방우달 시집 <<전하, 이 시집이 베스트셀러가 되면 아니되옵니다>> 중에서

 

1
개 짖는 소리 들리고 거짓말같이

펑펑 소리에 멍멍 짖어대는 겨울
매운 날이 풀리며

움막에 발 묶인
상거지떼 들판으로 쏟아져나온다

맨처음 인간이 뱉은 기침소리 떠도는
맨발 끝이 끝없이 시린 하늘가에서
발을 헛디딘 눈발들이
퍼부어대는

2
눈속에 눈이 내리고
산과 들판이 온통 내 눈 속에 쌓여
눈이 흐리다
눈거풀 내리면 귓속에서
폐가 무너지는 소리 쌓인다

무더기로
무너진 폐가의 등을 짓누른다

3
새떼들이
흰 들판 위에 흙 묻은 발자국 찍는다

(더 이상은 걷지 못하겠어,
이 질퍽한 길)

길 벗어난 새 한마리
길 위에 눈을 찍는다
부리가 몹시 차다

총알을 겨누던 초병의 눈알이 힘없이
눈속에 처박히고
얼어붙은 손가락이 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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