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막골 31

아이가 먼저 '괜찮아요!' 라고 말했다

아이가 먼저 '괜찮아요!' 라고 말했다/방우달(처세시인) 애막골 산책 중이다(15:00). 춥지도 덥지도 않은 선선한 가을 날씨다. 걷기에 아주 적당하다. 앞서서 3대 가족 5명이 산책 중이다. 2명은 맨발이다. 4~5세 남자 아이가 등산 가방을 메고 달려가다 넘어졌다. 벌떡 일어나서 손을 털고 뒤돌아 보며 먼저 "괜찮아요!" 라고 외친다. 가족 중 어느 누구도 넘어진 아이를 보고 달려 가지도 않았고 일으켜 주려고도 하지 않았다. 도리어 그 어린 것이 가족들이 걱정할까봐 벌떡 일어나서 '괜찮아요!' 라고 외치는 모습이 대견스럽다. 어른 같다. 감탄했다. 어린 천사의 천성을 보는 것 같았다. 가정 교육 탓인지 천성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아이는 분명히 잘 자랄 것이고 훌륭한 우주 시민이 될 것이다. 부자가 되..

애막골 약수터에서

애막골 약수터에서/방우달(처세시인) 그저께 애막골 산책 중에 잠시 가을 폭우가 쏟아졌다. 키 크고 약한 코스모스와 구절초는 다 쓰러졌다. 며칠 전에는 제주도 H 시인이 돌아가셨다. 나보다 15살 위다. 나도 얼마 남지 않았음을 예감한다. 얼마나 오래 사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사느냐가 더 중요하다. 오늘 산책길 지나 오면서 의자에 앉아 명상을 즐기는 듯한 한 노인을 만났다. 기다렸다가 가실 때 여쭤보니 나보다 11살 위다. 무릎이 아파서 잘 걷지 못해 자주 쉰다고 한다. 겉으로 보기엔 아주 건강하고 젊은 모습이다. 꾸준히 숲속을 산책하고 명상을 해서 건강을 연장시키나 보다. 약수터 샘물을 한 모금 마시고 일광욕을 한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다시 느릿느릿 쉬엄쉬엄 걷는다. 애막골 야산 조그만 정상에서..

애막골 새벽시장은 살아 있다

애막골 새벽시장은 살아 있다/방우달(처세시인) 춘천에는 조그만 백화점 1개 대형마트 3개 중소형마트 식품매장 전통시장은 다수가 있다. 새벽시장은 2개가 있는데 애막골 새벽시장이 크다. 석사동 소재 산 아래 서부대성로 인도에서 열린다. 일년 내내 휴장 없이 열린다. 채소 과일 생선 육류 김밥 등 철따라 온갖 상품이 나온다. 춘천은 물론이고 화천 홍천 양구 등지에서도 농업임업어민들이 온다고 한다. 새벽 2~3시부터 오전 11시까지 열린다. 요즘은 추석 명절 밑 주말이라 가장 번창하고 활기차다. 가난한 생산자들이 손수 지은 농임수산물을 팔아 자식들 교육시키고 먹고 살았다고 한다. 그것이 시초였는데 수십년 사이 많이 변했다고 한다. 지금은 서울 가락시장에서 사와 파는 상인도 있다. 옛날에 새벽시장에서 벌어 키운..

애막골 산책로 구름다리

애막골 산책로 구름다리/방우달(처세시인) 춘천 동부노인복지관 옆으로 진입하는 애막골 산책로를 조금 걸으면 구름다리라 불리는 짧고 조금 높은 다리를 만난다. 내가 처음 춘천으로 이사왔던 십여년 전에는 출렁거리는 다리였는데 그 후에 튼튼한 고정된 다리로 바뀌었다. 가끔 젊은이들이 크게 흔들리게 장난도 쳤다. 요즘 그 맛은 없지만 고마운 다리다. 다리를 건너면 본격적으로 산책로가 쭉 펼쳐진다. 육산이라서 맨발로 걷는 사람들이 많다. 오늘은 집에서 07:50에 나왔는데 산책로가 말끔히 쓸려져 있다. 조금 걷다 길을 쓸고 계시는 할아버지를 만났다. 감사하다는 인사를 건네고 몇 가지 여쭸다. 시간이 날 때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봉사하신다고 한다. 60대 중반의 마른 노인으로 보인다. 산책로를 말끔히 쓰는데도 찬반이..

애막골 새벽 산책 단상

애막골 새벽 산책 단상/방우달(처세시인) 20일만에 새벽 5시 애막골 산책에 나서다. 슈퍼 문이라던 보름달이 일주일 지나니 반쪽이다. 한 달 일생의 허무와 무상을 보여준다. 기후 변화 탓인가 올해 매미는 매섭게 운다. 7년 고행 끝에 보름 동안 극락 천국에서 울거나 노래한다. 어느 생인들 짧고 소중하고 절박하지 않으랴. 산책 두 시간 반 동안 황홀하게 내 귀는 완전 씻겼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멀리 높이 난다. 벌레도 많이 잡고 비행도 예술이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먼저 총 맞아 죽는다고 생각하는 새는 날기도 전에 굶어 죽는다. 조금 일찍 죽으나 늦게 죽으나 짧은 일생은 그게 그거다. 대가들은 대부분 SNS에 와서 놀지 않는다. 자신을 자랑하거나 가볍게 위로 받으려 하지 않는다. 말 장난하며 놀 시간이 ..

애막골 여든 클럽

애막골 여든 클럽/방우달(처세시인) 최근 4번째 애막골 새벽 산책을 다녀왔다 05:10 비 예보가 있어서 접는 우산을 지참하고 출발 했다. 끝까지 비는 내리지 않았다. 후평 4단지 아파트 어린이 놀이터에는 유모차를 밀며 걷기하는 할머니도 있었다. 노인들과 젊은 여자도 몇몇이 놀이터를 몇 바퀴 돈다. 모두들 자신의 여건과 신체 조건에 따라 부지런히 건강관리를 잘 하고 산다. 애막골에는 새벽부터 남녀노소가 함께 산책한다. 느리게 걷는 사람, 빠르게 걷는 사람, 맨발로 걷는 사람, 체육시설을 활용하여 열심히 운동하는 이도 많다. 각자 알아서 즐겁게 운동한다. 그중에 애막골 여든 클럽 회원들을 만났다. 여든에서 미수까지 7인 남자들이다. 새벽마다 각자 좋아하는 코스로 운동하고 한 곳에 모여 담소하며 맨손 운동을..

동트는 아침 산책

동트는 아침 산책/방우달(처세시인) 내 산책 시간은 별도로 정해진 것이 없다. 새벽 낮 저녁 등 그날 상황에 따라 다르다. 장단점은 각각 다 있다. 오늘은 어제처럼 새벽 5시에 애막골 산책에 나서다. 나의 '야탑수행길' 중 시민으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는 길 중 하나다. 소나무가 많은 낮은 야산이라 남녀노소가 많이 찾는다. 가끔 고라니 등 산짐승도 만난다. 오늘도 내가 예의를 지켜주니 사진 찍으라고 고맙게도 한참 멋진 포즈를 취해준다. 이것도 횡재다. 돈만이 전부가 아니다. 화악산 용화산 구봉산 대룡산 등 먼 산도 바라본다. 눈이 확 트이니 마음도 확 열린다. 조금 있으면 명봉 위로 아침 해가 떠오른다. 아침 정기도 받아서 가리라. '행복사냥꾼'은 언제 어디서나 사냥감을 만난다. 남을 해치지 않는 좋은 마..

애막골 딱따구리 대참사

애막골 딱따구리 대참사 방우달(시인) 애막골 산책길 바로 옆 큰 참나무에 딱따구리 부부가 새 집을 지었습니다(2019년). 일주일에 4~5일 산책을 다니는 길이지만 언제 지었는지 몰랐습니다. 어느 날 사진 기사로 보이는 두 사람이 사진기를 설치해 놓고 뭔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궁금하면 못참는 성격이라 조심히 다가가서 여쭸습니다. "뭘 찍으십니까?" 참나무를 가리키면서 드나드는 딱따구리를 기다린다고 했습니다. 쳐다보니 주변이 말끔하고 예쁜 구멍이 하나 보였습니다. 생나무에 여린 부리로 저렇게 구멍을 뚫고 밑으로 50Cm 정도 내려가려면 여러 날이 걸렸을 텐데 어떻게 사람들 모르게 지었는지 신기했습니다. 조용한 곳도 많은데 왜 인적이 잦은 이 곳에 집을 지었을까? 궁금한 생각을 가지고 산책을 마치고 귀가..

아따, 일찍 갔다 오십니다!

아따, 일찍 갔다 오십니다 방우달(시인) 오후 3시다. 애막골 산책길에서 한 낯선 노인을 만났다. 나보다 10살 정도 위로 보이는 분이 먼저 인사를 건넨다. "아따, 일찍 갔다 오십니다!" 물론 우리는 코로나19 때문에 4개월째 마스크를 끼고 산책하고 있다. 애막골 산책길은 여러 군데 진입로가 있다. 그 만큼 하산로도 많다. 산책 코스가 짧으므로 나는 이 길 저 길 왔다 갔다 하며 날마다 다양한 코스를 선택하고 운동량도 몸과 마음의 상태에 따라 조절한다. 나는 내려가고 그 노인은 올라오는 길목에서 우리는 서로 마주쳤다. 모르는 사람이라도 보통 "안녕하세요?"라고 서로 인사를 나눈다. 그런데 오후 3시인데 일찍 갔다 온다고 특이한 인사를 받고 보니 그 인사말에 대하여 생각하게 된다. 보통 간단하게 인사치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