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에 없는 처세학

애막골 딱따구리 대참사

野塔 방우달 시인 2020. 6. 11. 00:46

애막골 딱따구리 대참사

 

방우달(시인)

 

애막골 산책길 바로 옆 큰 참나무에

딱따구리 부부가 새 집을 지었습니다(2019년).

일주일에 4~5일 산책을 다니는 길이지만 언제 지었는지 몰랐습니다.

어느 날 사진 기사로 보이는 두 사람이 사진기를 설치해 놓고

뭔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궁금하면 못참는 성격이라 조심히 다가가서 여쭸습니다.

"뭘 찍으십니까?"

참나무를 가리키면서 드나드는 딱따구리를 기다린다고 했습니다.

쳐다보니 주변이 말끔하고 예쁜 구멍이 하나 보였습니다.

생나무에 여린 부리로 저렇게 구멍을 뚫고 밑으로 50Cm 정도 내려가려면

여러 날이 걸렸을 텐데 어떻게 사람들 모르게 지었는지 신기했습니다. 

조용한 곳도 많은데 왜 인적이 잦은 이 곳에 집을 지었을까?

궁금한 생각을 가지고 산책을 마치고 귀가했습니다.

그날 저녁 지역 방송과 다음 날 지역 조간 신문에 크게 보도가 되었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일반 사진 작가들도 몰려 왔습니다.

애막골을 산책하는 사람들도 많이 알게 되어서 딱따구리 부부는 많이

힘들고 불편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또 여러 날이 흘렀습니다.

둥지 안에는 새끼들도 있는지 모를 일입니다.

벌레를 물고 들어가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애막골 딱따구리 부부는 새끼들도 낳고 키우며 행복하게 사는 듯 했습니다.

산책하는 사람들도 가능한 한 조심해서 조용히 지나가곤 했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조금 흐른 후 슬픈 소식이 들렸습니다.

어느 날 누군가 뱀 한 마리가 딱따구리 집에서 나오는 것을 봤다고 합니다.

아마 어른 새 한 마리와 새끼들을 다 잡아먹고 나오는 길인지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맞은 편 나무엔 살아 남은 어른 새 한 마리가 

벌레를 물고 속수무책으로 그곳을 바라보고 있었다고 합니다.

낌새를 알아차렸을 것입니다.

그 후 며칠 동안 살아 남은 어른 새는 집 주위를 맴돌고 있었습니다.

입에는 벌레가 물려있지 않았습니다.

슬픔에 깊이 파묻혀 굶은 모습이었습니다.

동물들도 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딱따구리 부부는 뱀들의 침범을 피하기 위하여 인적이 잦은 곳을 택하여

불편을 무릅쓰고 둥지를 틀었으리라는 생각도 문득 들었습니다.

딱 1년이 지난 지금도 애막골 딱따구리 가족의 대참사에 가슴이 미어집니다.

오늘도 그 산책길을 다녀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