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에 없는 처세학

아따, 일찍 갔다 오십니다!

野塔 방우달 시인 2020. 5. 19. 22:08


 

아따, 일찍 갔다 오십니다

 

방우달(시인)

 

오후 3시다.

애막골 산책길에서 한 낯선 노인을 만났다.

나보다 10살 정도 위로 보이는 분이

먼저 인사를 건넨다.

"아따, 일찍 갔다 오십니다!"

 

물론 우리는 코로나19 때문에

4개월째 마스크를 끼고 산책하고 있다.

 

애막골 산책길은 여러 군데 진입로가 있다.

그 만큼 하산로도 많다.

산책 코스가 짧으므로

나는 이 길 저 길 왔다 갔다 하며

날마다 다양한 코스를 선택하고

운동량도 몸과 마음의 상태에 따라 조절한다.

 

나는 내려가고 그 노인은 올라오는 길목에서

우리는 서로 마주쳤다.

모르는 사람이라도

보통 "안녕하세요?"라고 서로 인사를 나눈다.

 

그런데 오후 3시인데

일찍 갔다 온다고 특이한 인사를 받고 보니

그 인사말에 대하여 생각하게 된다.

 

보통 간단하게 인사치레로 하는 인삿말은 별 의미가 없다.

"식사하셨습니까?"

"안녕하세요?"

"잘 주무셨습니까?" 같은 말이 그렇다.

그냥 지나치기가 서먹서먹하니 말을 붙여 보는 정도다.

 

상대방이 "식사하셨습니까?" 하고 인사하면

내가 밥을 먹었든지 먹지 않았든지

그냥 "예."라고 받아주면 그만이다.

본래 그 진실 여부는 서로가 관심이 없다.

 

그 노인에게는 자신이 지금 산에 가는 중이니까

오후 3시에 하산하는 것도

자신의 기준으로 봐서는

이른 시간으로 생각할 수 있겠다 싶었다.

 

인사말에는 논리를 따지지 말아야겠다,

그냥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주고 건네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그날의 나의 사색은 끝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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