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따, 일찍 갔다 오십니다
방우달(시인)
오후 3시다.
애막골 산책길에서 한 낯선 노인을 만났다.
나보다 10살 정도 위로 보이는 분이
먼저 인사를 건넨다.
"아따, 일찍 갔다 오십니다!"
물론 우리는 코로나19 때문에
4개월째 마스크를 끼고 산책하고 있다.
애막골 산책길은 여러 군데 진입로가 있다.
그 만큼 하산로도 많다.
산책 코스가 짧으므로
나는 이 길 저 길 왔다 갔다 하며
날마다 다양한 코스를 선택하고
운동량도 몸과 마음의 상태에 따라 조절한다.
나는 내려가고 그 노인은 올라오는 길목에서
우리는 서로 마주쳤다.
모르는 사람이라도
보통 "안녕하세요?"라고 서로 인사를 나눈다.
그런데 오후 3시인데
일찍 갔다 온다고 특이한 인사를 받고 보니
그 인사말에 대하여 생각하게 된다.
보통 간단하게 인사치레로 하는 인삿말은 별 의미가 없다.
"식사하셨습니까?"
"안녕하세요?"
"잘 주무셨습니까?" 같은 말이 그렇다.
그냥 지나치기가 서먹서먹하니 말을 붙여 보는 정도다.
상대방이 "식사하셨습니까?" 하고 인사하면
내가 밥을 먹었든지 먹지 않았든지
그냥 "예."라고 받아주면 그만이다.
본래 그 진실 여부는 서로가 관심이 없다.
그 노인에게는 자신이 지금 산에 가는 중이니까
오후 3시에 하산하는 것도
자신의 기준으로 봐서는
이른 시간으로 생각할 수 있겠다 싶었다.
인사말에는 논리를 따지지 말아야겠다,
그냥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주고 건네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그날의 나의 사색은 끝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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