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코르 작품

지갑을 던지는 나무

野塔 방우달 시인 2011. 12. 12. 07:00

               지갑을 던지는 나무

                                                                               

 

 

                                                                                      방우달(시인)

 

 

 

 

 

단풍 든 잎들이 마른다.

마른 잎들이 지면 낙엽이 된다.

길에 낙엽이 쌓인다.

바람이 불고 낙엽이 뒹군다.

사람이 밟고 간다.

연인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낙엽진 길을 걷고 있다.

노인이 지나간다.

낙엽 밟는 소리가 들린다.

길 옆엔 조그만 강이 흐른다.

낙엽 하나를 강물에 띄운다.

흔들리면서 흐른다.

어느덧 노을 빛이 강을 물들인다.

걷는 사람들을 물들이고

그 분위기에 젖어 내 마음도 물든다.

어둠 속에서 차츰 그림자가 사라진다.

 

어느 시인은 낙엽을 지폐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대다수의 나무들은

일생 벌어들인 지폐를 때가 되면 모두 버린다.

훌훌 벗어난다.

맨몸으로 겨울을 맞는

구도자의 자세를 해마다 보여준다.

지갑을 던지는 사람만이 행복의 문을

열 수 있다는 것을 은유하고 있다.

마음의 행복에 도달하는 자는 지갑이 없다.

그러나 나는 지갑이 있다.

보통 사람들은 지갑을 버릴 수 없다.

지갑을 버리는 사람은 성인이다.

보통 사라들은 지갑을 가져도 좋다.

그러나 지갑을 두껍게 만들 일이 아니다.

지갑을 가볍게 채워야

마음이 행복해지리라.

지갑을 가볍게 하는 일도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지만

노력하면 가능하리라.

나무들이 모든 지폐를 버리는 이유를

생각하면서 실천하면 닿을 수 있으리라.

 

강물에 풀잎을 띄우고

낙엽을 띄워 보내는 일은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어릴 때 한번씩 해본 일이다.

거의 본능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버린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인가를 보여주고 있다.

동심의 아름다움이

맑은 강물과 함께 흐른다.

그러나 흐르면서 오염되기 시작한다.

오염되면서 두꺼워진다.

두꺼워지면 가라앉는다.

가라앉으려고 할 때 뜨고 싶다.

그렇지 않고 더 두꺼워져

아주 가라앉아 버리는 경우가 더 많다.

 

뜨고 싶은 사람은 가끔 강가를 찾아간다.

강가에 앉아 풀잎이나 낙엽을 띄워본다.

띄워 보고 지갑이 가벼워야 하는 까닭을 배운다.

잎들이 강물을 따라 떠내려간다.

나무들이 지폐를 일제히 버리는

가을엔 사람들이 경건해진다.

고독해진다.

마음이 아름다워진다.

그래서 여행을 하고 싶어한다.

대화를 나누고 싶어한다.

가을의 대화는 밀어에 속한다.

밀어지만 모두가 알아들을 수 있다.

조금의 관심은 필요하지만.

 

지갑을 던지는 사람만이

행복의 문을 열 수 있다.

마음의 행복을 담을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가을 나무들에게 감사한다.

강물은 끝없이 흐른다.

 

 

*<지갑을 던지는 나무>(방우달 지음. 정일출판사. 2000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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