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코르 작품

이것만은 안돼요

野塔 방우달 시인 2011. 12. 31. 07:00

 

             이것만은 안돼요

                                                                  

                                                                방우달(시인)

 

 

 

 

정다울 때, 사이가 좋을 때

털어놓은 비밀이나 상처나 치부를

사이가 나빠졌다 하여, 생명을 거는

경쟁자의 관계가 되었다 하여

그것을 이용하거나 폭로하는 것은

가장 비인간적이다.

짐승보다 못한 교활한 자이다.

 

자신의 비밀이나 상처나 치부를

또는 노출되면 약점이 되는 것을

상대방에게 털어놓는다는 것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순수한 마음의 상태이고

가장 아름다운 교감의 표시이다.

 

손해를 보면서까지

자신을 발가벗는 사람은

얼마나 순수한가.

삶의 동행자가 되어도 훌륭하다.

 

우리는 때로 비겁한 폭로를 본다.

서로 믿고 친밀한 관계에서

둘 사이에 있었던 다정한 말들을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상대방은 죽어도 괜찮다는 식으로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간사스런 인간의 모습을 본다.

 

친구 사이에 속삭인 말들

부부 사이의 정다운 말들

상사 동료 부하와 건낸 말들

뜻을 같이하는 사람끼리 나눈 말들이

서로 틈이 벌어졌다 하여

싸늘하게 썰물처럼 일시에 빠진다면

얼마나 허탈할 것인가.

또한 그 배신감은 어쩌고.

말은 항상 아껴야 한다.

약점의 말, 모략의 말,

떳떳하지 못한 말들은 삼켜야 한다.

물론 행동으로 옮겨서도 안 된다.

 

달콤한 말은 달콤한 말대로

쓴 말은 쓴 말대로

말의 옹기에 고이 담아두고

꺼내 보여주지 말아야 한다.

저절로 익어 파문도 없이

허공으로 사라질 때까지.

 

둘 사이 나눈 말이 아름다운 것은

은밀한 마음 속의 말이기 때문이다.

 

그 말은 일회용이 아니고

그 말은 이해관계가 없는 말이고

그 말은 숨길수록 의미가 있는

그 말은 귀하고 신비한 말이다.

*<지갑을 던지는 나무>(방우달 지음. 정일출판사. 2000년)에서


 

'앙코르 작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혹 또는 보시/방우달  (0) 2013.02.24
좋은 책 맛있게 읽기  (0) 2012.01.03
멀리서 보기 가까이서 보기  (0) 2011.12.22
지갑을 던지는 나무  (0) 2011.12.12
엘리베이터 단상斷想  (0) 2011.1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