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책 맛있게 읽기
방우달(시인)
무엇을 하고 있을 때가 행복한가?
그것은 사람에 따라 다를 것이다.
또 한 가지 일로만 행복을 느끼는 것도 아닐 것이다.
나는 좋은 책을 읽고 있을 때
독특한 행복을 느낀다.
내게 있어 좋은 책이란
그 책을 읽으면서 "맞아, 맞아!"를 연발하며
"같은 사람인데도 나는 왜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고
이렇게 쓰지 못하는가" 탄식하며
나를 기쁘게 절망시키는 책이다.
좋은 책을 맛있게 읽는 법은
누에가 뽕잎을 먹듯이
책의 내용을 잘근잘근 씹는 것이다.
뽕잎은 싱싱한 생명이다.
그 속에는 바람과 햇살과 별빛과
온갖 영양소가 덤뿍 담겨 있다.
누에는 뽕잎을 먹고 고치를 만들고
나방으로 부화하고
다시 생명을 잇는 신성한 알을 낳는다.
뽕잎은 차원이 다른 세계로의
순환을 가능케 하는 디딤돌이다.
책 읽기는 인간이 종이를 먹고
차원이 다른 영혼으로 인도하는 것이다.
누에가 뽕잎을 먹는 것과 같다.
*<내겐 봄이 오지 않아도 좋다>(방우달 지음. 여름. 2009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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