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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대표선배가 '88만원 세대'에게 <1>시골의사 박경철

野塔 방우달 시인 2011. 9. 29. 07:41

 

시골의사 박경철 "청년들, 등록금처럼 스스로 목소리 내야 바뀐다"

대한민국 대표선배가 '88만원 세대'에게 <1>시골의사 박경철

편집자주|머니투데이는 '시골의사' 박경철 안동신세계병원장을 시작으로 앞으로 매주 한차례씩 대한민국 청년들의 멘토가 되고 있는 대한민국 대표 선배들의 인터뷰를 게재한다. 이를 통해 88만원 세대의 고통과 좌절을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 이들이 88억원 세대로 거듭날 수 있는 대안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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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들여진 청년들에 '실패할 자유'줘야
박 원장은 "대한민국 청년들에게서 '스톡홀름 증후군'이 엿보인다"며 안타까워했다. 스톡홀름 증후군은 인질로 잡힌 사람들이 인질범들에게 동화돼 오히려 호감을 나타내는 심리현상. 그는 "성공한 사람의 뒤통수만 쳐다보며 달리게 만드는 기성세대의 질서에 동화돼 많은 젊은이들이 그 줄에 서지 못하면 도태될까 두려워하고 있다"며 "청년들이 창조적 긴장을 유지하면서. 청년들 스스로 질서를 바꾸기 위해 요구하고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이명근기자 qwe123@
'시골의사' 박경철 안동신세계병원장이 사무실로 사용하는 서울 종로구 충정로의 한 오피스텔 거실에는 대형그림 하나가 걸려있다. 언뜻 봐서는 서양명화 같다. 그런데 기자가 걸어 들어가는 사이, 허리를 숙이고 있던 그림 속 여자 모델이 스르르 옷을 벗는 것이 아닌가. 명화가 아니라 누드화였다.

"이거요? 배준성 교수가 하는 작업 중 하나인데, 관람객들에게 일종의 '야지(조롱하다는 뜻의 비속어)'를 놓는 거죠. 이쪽에서 보면 옷을 입고 있는데 저쪽에서 보면 벗고 있잖아요." 박 원장은 배 교수의 이런 '야지' 컨셉이 마음에 드는 듯했다.

대한민국 청년들이 왜 이토록 불행한지에 대해 풀어놓은 그의 이야기도 야지까지는 아니지만 거의 그 언저리였다. 대상은 바로 기성세대였다. "청년들이 우울하고 불행한 건 기성세대가 자신의 성공경험을 강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성세대가 기득권을 놓기가 싫기 때문이죠."

박 원장은 대신 청년세대에 대해서는 행동을 촉구했다. "침묵만 하고 있으면 안됩니다. '선택할 수 있는 힘'을 이용해야 합니다. 엠티 가는 대신 전부 손잡고 투표하러 가야 합니다. 그래야 바뀝니다." 머니투데이가 박 원장을 인터뷰한 것은 지난달 초순 무렵. 하지만 그의 얘기는 마치 최근 서울시장 출마를 고려중인 안철수 서울대융합기술대학원장의 출사표를 미리 밝힌 듯하다. 박 원장은 안 원장과 청춘콘서트 전국투어를 진행하고 있다.

기성세대에 대한 박 원장의 '야지'는 모질고 혹독했다. "기성세대의 성공방식은 '잘 살아보세'라는 목표를 정해놓고 오와 열을 맞춰 뛰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달려간 흔적을 따라 최대한 빨리 따라가는 것, 바로 이겁니다. 고민도 필요 없고, 가다가 걸려 넘어지면 밟고 넘어가고, 신호 걸리면 통과해버리고, 호루라기 불면 봉투 꺼내서 '우리가 남이가?' 하며 찔러주면서 모든 과정을 돌파하는 것이죠. 기성세대가 이런 질서를 강요하니깐 젊은이들이 불행한 것입니다."

한마디로 전후좌우 살펴볼 여유도 없이 오로지 잘 뛰는 사람 뒤통수만 보고 달려야 하는 사회를 만들어 놓았으니 청년들은 눈 앞이 막막하다는 것.(그는 자신에 대해서는 기성세대와 청년세대 사이의 중간세대라고 규정했다)

기성세대 줄세우기에 대부분 루저되는 세상
경쟁,성공 우선주의..공공의식 소멸시켜


"어떤 문제가 생겼냐 하면 한창 성장할 때는 뒷줄에 선 사람들도 통과했지만 점점 커트라인이 짧아지게 됐다는 겁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패자가 되고있는 거죠. 지금은 공부 잘하는 재능 하나만 쳐주고 있습니다. 공부 잘하는 줄에 노래 잘하는 재능, 그림 잘 그리는 재능도 다 세우고 있잖아요. 이렇게 되면 대부분 루저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박 원장은 특히 "지금은 창의의 시대이기 때문에 더더욱 과거 성공경험의 폐해가 깊다"고 지적했다. "지금은 경기장 레인이 아니라 광야에서 뛰는 시대입니다. 만들고 개척하는 창의의 시대이죠. 그런데 창의라는 게 두들겨 팬다고 나옵니까. 줄 서서 따라 한다고 됩니까. 창의는 머리를 맞대야 나옵니다. 그런데 줄을 세워서 달리게만 하고 있으니 이마를 맞댈 수가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스마트폰 밀리고, 정보기술(IT) 밀리고, 청년들에겐 기회가 없어집니다. 지금은 줄을 세울 게 아니라 줄을 없애고 열어줘야 합니다." 그는 '전복'이라는 표현도 썼다. "청년들을 보면 펄펄 살아있습니다. 그런데 기성세대가 이들을 다 눌러놓고 있습니다. 기성세대가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사회가 전복된다'는 문제의식도 못 느끼고 있는 것이 정말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러면서 박 원장은 줄 세우기에 가장 '열심인' 집단으로 대기업을 지목했다. "정주영 회장 같은 창업 1세대의 공(功)은 당연히 높이 평가해야 합니다. 기업가정신으로 지금의 한국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 톤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지금 대기업은 물려받은 돈으로 명품전쟁, 빵 장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욕 먹는 겁니다. 그러면서 또 한편으론 청년들을 줄 세웁니다. 똑똑하면서 말 잘 듣는 기계를 뽑아 양성하는 거죠.

이렇게 사람들을 뽑고 기르니까 창의적인 사업의 길은 안 보이고, 위험부담 안고서 새 사업을 펼칠 수가 없는 것이죠. 사실 청년들이 느끼는 두려움이나 재벌 3세이 느끼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나 비슷합니다. 이런 두려움 때문에 청년들은 공무원 시험으로 몰리고 재벌은 빵 장사까지 하는 것입니다. 대기업이 청년들에게 도전하라고 하는 건 굉장히 비겁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청년들 자신에게는 책임이 없을까. 뒤통수만 보고 달리게 하는 사회논리에 스스로 종속돼 내면화 해버린 책임은 없는 것일까. 박 원장은 "청년들도 길들여졌다. 나만의 문제에만 매몰되고 있다. 줄을 서지 않으면 도태될지 모른다는 불안 때문이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그는 "젊은이들에게 화살을 돌릴 수는 없다"며 "청년들이 이렇게 된 건 기성세대 때문이다"고 역설했다.

지금은 경기장 레인 아닌 광야서 뛰는 창의의 시대
청년들 선택할수 있는 힘 가지고 시위해야


"초등학교 6년 내내 양동이 들고 구더기 득실대는 변소를 청소했습니다. 어머니가 집안일 하고, 아버지가 가계를 책임지는 대신 자식들도 일정부분 책임을 맡았던 거죠. 그런데 지금 부모들은 자기 아이가 길거리에 떨어진 휴지를 치우면 손 더러워진다고 혼냅니다. '쓰레기 치울 사람은 따로 있다' '넌 종자가 다르다'는 식의 교육 아니겠습니까. 이건 대단히 무서운 얘기입니다. 공공의식이 소멸되고 있는 것입니다." 기성세대가 경쟁, 성공만 강요하고 있기 때문에 청년들도 이에 길들여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청년들이 도전을 주저하고, 공적인 의식이 부족한 이유가 과거 성공경험 때문이라면 문제해결의 출발은 결국 기성세대의 성공방식을 뒤집는 것일 터. 박 원장은 "기성세대는 청년들의 숨통을 틔워주면서 도전하라고 해야 한다"며 "그 숨통은 바로 과거의 성공경험에는 없었던 저스티스(정의)와 페어(공정)"라고 말했다.

"제비가 집 짓는 걸 한번 보세요. 지푸라기가 마를 때까지 기다렸다가 단단해지면 그 다음에 새끼를 낳습니다. 새끼가 날개에 힘이 생길 때까지 엄마 제비는 새끼를 지켜주고 나는 법을 가르칩니다. 미천한 제비도 새끼들에게 최소한의 주거와 교육 등 생존에 필요한 것들을 다 갖춰주고 혼자 날아보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주거와 먹는 것, 교육은 알아서 질주해야 합니다. 최소한 추위와 더위를 피할 수 있는 공간, 먹고 사는 문제는 국가가 보장해야 합니다. 사회가 청년들을 위해 안전판이 돼줘야 합니다. 그래야 청년들이 도전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적어도 청년들에게 실패를 해도 괜찮다는 신뢰를 주고, 어깨도 두드려줘야 청년들이 도전하고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20대가 나서서 외치면 사회 바꿀수 있어
내 발등 불 아닌 남들 불도 함께 꺼주자


박 원장은 대한민국의 88만원 세대 청년들에게 "미래는 더 좋아질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라"고 주문했다. "한 10년만 있으면 기성세대는 다 퇴장합니다. 청년들의 세상이 됩니다. 많은 청년들이 눈앞의 취업을 위해 스펙을 쌓고 있지만 앞으로는 패러다임 자체가 바뀝니다. 청년들은 현상을 헤치고 본질을 봐야 합니다. 지금과 같은 줄 세우기는 무의미해지는 시대가 머지않아 오게 될 것이고, 이런 믿음이 세상을 더 빨리 바꾸게 됩니다. 내 테두리 안의 문제가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으면 담을 뛰어넘는 초월성을 가지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죠. 내가 가진 재능을 갈고 닦는 것이 훨씬 유리할 것이라는 믿음이 지금 청년들에게 필요합니다."

박 원장은 이어 "청년들이 창조적 긴장을 유지해가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청년들이 재미있는 것을 하고 싶다고 하는데 사실 애 안 쓰고 할 수 있는 재미있는 거라곤 술 담배 도박 마약뿐입니다. 처음에는 어떤 일이든 다 힘들죠. 자전거, 등산, 스케이트도 처음에는 꼬리뼈 아프고 발목, 허리 다 아프죠. 이겨내고 잘할 수 있게 돼야 기쁨이 생깁니다. 청년들이 익숙하지 않은 것, 당연하지 않은 것, 습관적이지 않은 환경을 계속 만나나가야 합니다. 쳇바퀴처럼 산다면 오퍼레이션 시스템 없는 하드디스크에 불과합니다. 익숙하지 않은 것에 익숙해지고자 하는 끊임없는 창조적 긴장이 필요합니다."

박 원장에게 청년들에게 보다 손에 잡히는 메시지를 부탁해 보았다. 돌아온 답변은 "요구해서 고쳐야 한다. 투표해서 바꿔야 한다"는 것. "대학 등록금도 침묵했으면 쭉 갔을 것 아닙니까. 청계천에서 소리라도 지르니깐 달라지는 겁니다. 청년들은 '선택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시위를 해야 합니다. 투표 날 엠티 가는 대신 손잡고 나와야 합니다. 외치면 수요가 되고, 결국 공급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사회가 바뀌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청년들이 내 발등의 불뿐 아니라 남들 불까지 꺼줄 수 있는 공적인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내 발등만 불을 끄면 머리에 불 날라오고 다 타죽습니다. 남들 불붙은 것도 함께 꺼줘야 합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지면 불씨의 원인을 찾아 같이 양동이 들고 가서 꺼야 합니다."

대한민국 청년들에게 던지는 박 원장의 메시지는 두 가지였다. 88만원 세대를 88억원 세대로 키우려면 이들이 한번 꿈틀해볼 수 있도록 페어한 질서를 우리 사회가 만들어 주는 것, 그리고 청년들 스스로 직접 그 질서를 만들고자 노력하는 것이었다.
정리=최우영기자 yo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