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속에서 물들지 않기
방우달(시인)
늦겨울 비가 내린다.
나무들의 모습이 수상하다.
잎들을 낳으려고 몸을 틀고 있는가 보다.
보는 사람도 산고를 느낄 수 있을 정도다.
겨우내 딱딱하고 검은 색깔의 버드나무 잔가지들이
부드러워지고 연두색으로 바뀌고 있다.
모성은 강하다. 봄물이 오르나 보다.
T V 속에서는 봄을 알리는 영상들이 우러러 몰려나온다.
남쪽지방으로부터 동백꽃, 유채꽃이 피고
새싹들이 파릇파릇 돋아나고
바다새들의 날개 짓이 한결 부드럽고 여유로와 보인다.
살아있는 모든 것에 봄물이 예쁘게 들어 있는 듯 하다.
물은 물(水), 물(物), 물(色)이다.
또한 물은 세상살이의 다른 이름이다.
물(水)은 원래 색, 냄새, 맛이 없는 액체다.
그러나 세상살이는 색깔과 냄새와 맛이 있다.
물(物)은 비싼 것, 싼 것과 귀한 것,
흔한 것과 필요한 것, 필요 없는 것이 있다.
우리의 삶도 봄물처럼 싱싱하고 예쁘게 물들어야 한다.
물론 희망도 가득 잉태하고 있어야 하리라.
그러나 삶은 물(水), 물(物)속에서 물에 빠지지 않고
살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어찌 보면 우리네 삶은 밀림의 삶과 같다.
크게 보면 대자연의 질서라고 볼 수도 있지만 생존의 전쟁터다.
초원은 피의 바다다.
약육강식의 원리와 비열함이 판을 치고 있다.
그래서 밀림의 삶은 우아하지 않다.
밀림의 삶과 같은 세상살이에서
우리는 더럽게 물들지 않아야 한다.
"잔잔한 호수에/ 잠자리 한 마리/ 열십자(+)로 눕네//
한 번/ 호수가 꿈틀거리고/ 바로/ 큰 물결이 이네//
누운 자리 지우고/ 그 잠자리/
열십자(+) 지고/ 하늘로 날아가네//
물을 묻히지 않고/ 호수에 누웠던/ 그 날개 빛나네//"
ㅡ 졸 시집< 나는 아침마다 다림질된다> 중
'호수에서 만난 잠자리' 전문
몸을 가진 모든 것들은 물(物)에 빠지기 쉽다.
먹고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잠자리처럼
물(水)에 앉지만 물(水), 물(物)에 빠지지 않으려면
십자가를 진 성자처럼
하늘로 날아갈 영혼을 지니고 살아야 가능할 것이고,
그런 삶은 우아하고 성스럽다고 할 수 있으리라.
인간이 잠자리처럼 살기는 무척 어렵다.
잠자리는 곤충 중에서도 욕심이 없고 어리석어 보인다.
그리고 생존에 꼭 필요한 만큼만 취하고
남들에게 해를 끼치는 일이 별로 없는 것 같다.
R.W 에머슨이 말했다.
"이 세상에서 세상의 의견을 쫓으며 사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리고 우리 자신의 의견을 쫓으며 사는 것도 쉬운 일이다.
하지만 훌륭한 사람은 군중 속에서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독자적으로 사는 사람이다."라고.
세상살이는 혼자 사는 것이 아니다.
아무렇게나 사는 삶은 쉽다.
그러나 남들과 더불어 살면서 자기의 삶을 갖고 살기는 쉽지 않다.
인생철학이 있어야 하고 인내와 희생이 있어야 가능하다.
훌륭한 사람은 들에 핀 한 송이 꽃과 같다.
많은 풀들 속에서 질투, 시기 없이 더불어 잘 살면서
아름답고 향기롭게 꽃을 피우고,
세상에 살면서 세상에 물들지 않고 개성 있게 살기 때문이고
세속적인 것, 탐욕을 벗어나 최소한의 삶을 살고
자본과 물질만능주의의 물결 속에서
중용과 조화와 균형을 맞추면서 도도히 흘러가기 때문이다.
인간에겐 시간도 물질도 유한하다.
그렇기에 이 세상을 살면서 나쁜 것에 물들지 않고 살려면
욕심을 줄여야 한다. 욕심을 줄이면
바다에서 금방 건져 올린 생선처럼 일생 물이 싱싱하고
인간의 맛과 사람의 향기가 묻어나는 물 좋은 삶이 될 것이다.
그리고 마음에 들지 않는 세상을 바꾸려고 하기 보다
자신을 먼저 바꾸어야 한다.
능력에 의한 차등을 인정하고 무리한 집착을 버린다.
무욕과 무명의 길은 '눈 낮추기'가 아니다.
물(物)을 초월한 '눈 높이기'의 삶이다.
'눈 높이기'의 삶은 눈앞의 이익보다 '바른 것'
'옳은 것'에 '눈 돌리기'이다.
더불어 잘 사는 길을 찾아 나서는 길이다.
어차피 물이 들려면 가을의 단풍처럼,
저녁노을처럼 우리네 삶도 아름답게 물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욕과 무명 뿐 만 아니라
먹고사는 일 외에 자원봉사나 취미생활처럼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한 가지이상 가꾸어야 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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