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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에서 본 '한국 60년'

野塔 방우달 시인 2011. 10. 8. 00:39

 

[조선데스크] 폴란드에서 본 '한국 60년'

 

입력 : 2011.10.07 23:08

김태훈 국제부 차장
소설가 김인숙은 '문단의 한비야'라고 할 수 있다. '바람의 딸' 한비야씨가 세계를 돌며 사람들 살아가는 이야기를 전한다면, 김인숙씨는 바깥 세계에서 소설거리를 찾는다. 지난해 동인문학상을 받은 김씨의 소설집 '안녕, 엘레나'에도 세상을 돌아다니는 이들이 여럿 등장한다. 작가의 해외체류 경험을 바탕으로 빚어낸 인물들이다. 김씨는 지난해 발리에 머물렀고 그전엔 중국에서 3년반, 호주에서 1년반을 살았다. 김씨는 "밖에 나가서 보면 안에 있을 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고 했다.

지난달 말 폴란드 투자청 초청으로 1주일간 폴란드에 머물면서 김씨의 말을 떠올렸다. 폴란드 사람들과 대화하고 그들이 쓴 글을 읽으며 '동유럽인의 시각'이라는 바깥창으로 한국을 볼 기회를 가졌기 때문이다. 전에도 그런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서유럽이나 미국 출장을 갔을 때도 한국은 화제가 됐다. 많은 사람들이 "너희, 많이 컸다"고 했다. 하지만 폴란드인들은 다른 시선으로 우리를 봤다. "우리도 너희처럼 되고 싶다"고 했다.

폴란드인들은 한국과 폴란드가 비슷한 역사를 가졌다는 말을 여러 번 입에 올렸다. 통역을 맡은 바르샤바대 출신의 안나씨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났을 때 바르샤바는 6·25전쟁 직후의 서울처럼 모든 것이 파괴됐다"고 했다. 폐허의 절망을 딛고 화려하게 변신한 서울이 바르샤바 시민들에게 희망의 증거인 듯했다. 스와버마르 마이만 폴란드 투자청장도 독일·러시아·오스트리아의 3국 분할로 폴란드가 사라졌던 망국(亡國) 경험을 얘기하며 100년 전 열강의 틈바구니 속에서 침몰했던 한반도의 역사를 언급했다. 마이만 청장은 "이제 우리도 (한국처럼) 미래를 내다보고 발전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바르샤바를 떠나 17세기 왕정시대 수도였던 크라쿠프로 가는 국내선 비행기 안에서 기내지를 꺼내 읽었다. 속리산 법주사 사진을 크게 쓴 '곡창 너머 집'이란 기사에서 눈이 멈췄다. 지난 10년간 한국을 수시로 드나들 만큼 한국 땅의 매력에 빠져 지냈다는 필자는 서울 청계천광장을 거닐고, 보성 녹차밭과 울산의 문수산에 올랐다며 한국을 '아름다운 풍경과 사회간접자본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곳'이라고 소개했다. "한국은 부러운 것투성이!"라고도 했다. 무명작가가 원고료를 받을 목적으로 한 기고인가 싶어 옆 자리에 앉은 폴란드인에게 글쓴이를 아느냐고 물었더니 반색을 하며 "아, 칼리친스카(Kalicinska·55)! '호수 건너편 집'이란 책이 수십만부 팔린 유명작가입니다"라고 했다. 한국에 대한 폴란드인들의 관심이 어느 정도인지 느껴졌다.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한국현대사를 부정하고 우리가 이룬 성과를 폄훼하는 이들을 떠올렸다. 20년 전 동구 공산권 붕괴를 애석해하던 그들은 이후 폴란드가 1990년대 내내 연평균 6%의 높은 경제성장을 이루며 사회주의로 피폐해졌던 국가 재건에 나선 사실과 그 재건의 벤치마크 중에 한국이 있다는 점을 어떻게 볼까 싶었다. 그들에게 지금이라도 바깥세상의 눈과 귀를 빌려 한국의 지난 60년을 다시 보라고 말해주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