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의 아이콘 스티브 잡스가 떠났다. 그가 남긴 통찰력 있는 말과 행동에 곁들여 여러 가지 일화들이 다시 한번 회자되고 있다.
돈과 관련해서는 2가지가 사람들의 관심을 끈다. 하나는 그가 애플에 복귀한 뒤 14년간 최고경영자(CEO)로 일하며 연봉을 1달러씩 총 14달러밖에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둘째는 그가 평생의 경쟁자였던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와 달리 기부에 인색했다는 점이다.
◆돈에 초연한 잡스, 기부 기록도 없어'뉴욕타임스'의 앤드류 로스 소킨은 지난 8월30일 기사에서 "잡스는 재산이 총 83억달러나 되지만 자선기금을 냈다는 기록은 없다"고 밝혔다. 또 "잡스는 워런 버핏과 게이츠가 미국 최고 부자들을 대상으로 전체 재산의 최소 절반은 사회에 환원하자는 취지로 만든 기부 서약(Giving Pledge)의 회원도 아니다"라고 전했다.
'와이어드'지는 앞서 2006년 기사에서 "어떤 자선단체의 기부 명단에도 잡스의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며 "잡스는 설득력 있는 언변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사회 현안에 대해 단 한 번도 의견을 말한 적이 없다"고 지적했다.
잡스는 돈에 연연했던 사람도 아니고 부를 과시하는데 관심이 있었던 사람도 아니다.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며 까만 터틀넥과 청바지만 고수하고 집안에 가구도 거의 들여 놓지 않았던 잡스에게 명품 소비가 뭐 그리 중요했으랴.
실제로 잡스는 1985년 '플레이보이'와 인터뷰에서 "돈에 대해 내가 갖고 있는 생각은 매우 우습다는 것"이라며 "(사람들의) 모든 관심이 돈에 집중돼 있지만 돈은 내게 일어날 수 있는 일 가운데 가장 통찰력 있는 일도, 가치 있는 일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돈에 초연했던 잡스는 왜 기부를 하지 않았을까. 사실은 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잡스는 1985년 '플레이보이'와 인터뷰에서 자선은 잘 하려면 전업으로 해야 한다며 "대부분의 자선활동은 평가 시스템이 없어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 알 수 없고 따라서 더 잘하기가 어렵다는 점이 문제"라고 말했다. 완벽주의자였던 잡스는 기부도 하려면 열정을 쏟아가며 최고로 하고 싶었지 하는 생색만 내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애플과 가족, 두 가지에 모든 에너지 쏟아NYT 소킨의 기사에서 익명을 요구한 잡스의 한 친구는 잡스가 자선보다 애플을 계속 확대하는데 자신의 에너지를 집중시키는 것이 (세상에) 더 좋은 일을 많이 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특히 췌장암 진단을 받은 뒤에는 이런 생각이 더 강해졌다고 한다.
같은 기사에서 또 다른 친구는 "잡스는 오로지 2가지 일에만 집중했다"며 "애플에서 최고의 팀을 구축하는 것과 그의 가족"이라고 전했다. 또 "그 두 가지가 잡스의 유산이며 나머지는 모두 그의 정신을 산만하게 하는 방해물이었다"고 말했다.
연봉을 1달러만 받은 것과 기부활동을 하지 않는 잡스의 모습은 모순되게 느껴지지만 실은 잡스의 똑 같은 면을 반영한다. 한 가지 일에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붓는 열정의 집중이다.
잡스는 시간을 쪼개 이 일, 저 일을 동시에 하는 멀티태스킹이 가능하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가슴을 뛰게 만드는 일, 스스로 위대하다고 생각하고 사랑하는 일에 자신의 전체를 던져 전력 질주하는 사람이었다.
잡스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일은 "매일 밤 잠자리에 들 때마다 우리는 정말 놀랄만한 일을 했다고 말하는 것"(월스트리트 저널, 1993년 인터뷰)이었고 그 놀라운 일은 기술과 문화로 세상을 혁신하는 것이었다.
미국 부자 6000명 이상을 심층 인터뷰해 정리한 책 '새로운 부자들'에서도 잡스와 비슷한 부자들의 성향이 나온다. "부자들은 자신이 '부자'라거나 '성공했다'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덜하다. 이런 경향은 열정을 추구하기 위해서 열심히 일한 사람일수록 더하다. 그들은 일을 사랑하고 개인적으로 의미 있는 목표를 세우고 자기가 하는 일을 좋아하고 좋아하는 일을 하는게 왜 중요한지 얘기해줬다."
◆부자 되려면 부자 꿈 버려야많은 사람들이 부자가 되기를 꿈꾼다. '빌딩부자'란 책이 장기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강남부자'니 'OO부자'니 하는 비슷한 책들이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빌딩 한 채 소유해 다달이 월세 받아 사는 것이 인생의 목표라면 그 인생은 너무 빈약하지 않을까.
강남에 사는 것이 꿈이라면 과연 그런 꿈을 꾸는 사람은 이 지구상에 무엇을 유산으로 남길 수 있을까. 아마도 자신을 과시하는데 돈을 쓰다 세상을 떠날 때 쓰고 남은 수많은 물건만 쓰레기로 남길 가능성이 높다.
잡스는 자신의 만트라(주문)가 집중과 단순함이라고 말했다. 쓸데 없는 관심사를 끊고 생각을 단순하게 만든 뒤 그 생각을 실현하는데 자신을 온통 쏟으면 돈이나 인기나 명예나 나머지는 저절로 따라온다. 설사 따라오지 않는다 해도 그건 이미 별 의미가 없는 일이다.
부자가 되려면 부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버려라. 돈에서 일로 관심을 옮길 때, 그리고 그 일에 에너지의 일부가 아니라 전체 에너지를 다 쏟아 부을 때 인생이 바뀌고 필요한 나머지는 다 따라오게 된다. 잡스의 삶과 '새로운 부자들'에 소개된 부자들의 공통점이다.
잡스가 사생활 노출을 극히 꺼렸다는 점에서 익명으로 기부를 했을 것이란 추측도 나온다. 실제로 음악밴드 U2의 리더싱어인 보노는 잡스가 아프리카 내 AIDS 퇴치운동에 가장 많은 기부를 했다고 소개했다.
잡스가 남긴 유산 대부분은 애플과 디즈니의 주식이다. 이 유산이 어떻게 상속될지, 일부가 기부될지 어떨지 자세한 사항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잡스가 길지 않은 자신의 인생 전부를 애플에 쏟았고 애플을 통해 인류에 이미 기부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