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 3

애막골 약수터에서

애막골 약수터에서/방우달(처세시인) 그저께 애막골 산책 중에 잠시 가을 폭우가 쏟아졌다. 키 크고 약한 코스모스와 구절초는 다 쓰러졌다. 며칠 전에는 제주도 H 시인이 돌아가셨다. 나보다 15살 위다. 나도 얼마 남지 않았음을 예감한다. 얼마나 오래 사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사느냐가 더 중요하다. 오늘 산책길 지나 오면서 의자에 앉아 명상을 즐기는 듯한 한 노인을 만났다. 기다렸다가 가실 때 여쭤보니 나보다 11살 위다. 무릎이 아파서 잘 걷지 못해 자주 쉰다고 한다. 겉으로 보기엔 아주 건강하고 젊은 모습이다. 꾸준히 숲속을 산책하고 명상을 해서 건강을 연장시키나 보다. 약수터 샘물을 한 모금 마시고 일광욕을 한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다시 느릿느릿 쉬엄쉬엄 걷는다. 애막골 야산 조그만 정상에서..

슬픈 묘비명

슬픈 묘비명 아, 단 한 번의 아들로서 남편으로서 ‘나’로서 실패한 사람 여기 잠들다 - 방우달의 《은퇴생활 그리고 행복의 지혜》 중에서 - 무덤에 묘비명이 있든 없든 모든 무덤은 무엇인가를 말합니다. 그 말을 우리는 읽고 듣습니다. 침묵하는 무덤은 깊은 의미를 던집니다. 죽기 전에 무슨 말을 묘비명에 쓸지 혹은 죽는 순간에 무슨 생각을 할지 정말 궁금하고 두렵습니다. 나의 일생 평가를 짧은 한 마디로 어떻게 압축할지 알 수 없지만 돌이킬 수 없는 삶과 죽음 앞 가장 정직하고 겸손한 나를 남기고 웃는 모습으로 떠나야겠습니다.

앙코르 작품 2020.1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