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탑이 말했다

사랑하는 딸들아, 미안하다

野塔 방우달 시인 2024. 7. 7. 15:42
사랑하는 딸들아, 미안하다/방우달(처세시인)
 
누군가 말했다.
"나는 내 책들에게 미안하다."
 
여자는 자랄 때 귀하게 키워야
시집가서 잘 산다고 했다.
잘 사는 것이 부잣집에 시집가는 것이고
손에 물 안 묻히고 사는 것이었다.
물론 옛날 얘기다.
 
그 기준으로 보면 내 사랑하는 딸들에게는
아버지로서 참으로 미안하다.
뭐든지 넉넉하게 예쁘게 귀하게
사랑스럽게 키우지 못했다.
못난 애비의 한스러움이 넘친다.
 
내 책들도 그렇다.
좀 괜찮은 출판사에서 멋진 디자인
편집 제본 등 빼어난 치장을 해줘야 했었다.
서점 매장에 버젓이 깔리고 외모에서
뒤지지 않게 성형도 해줬어야 했는데
못난 저자가 진실로 미안하다.
 
POD(주문형 출판)로 낳았기에
매장에 얼굴도 내밀지 못한다.
아예 경쟁 대상에 끼지도 못하는
깊은 슬픔이다, 한스러움이다.
 
어느 독자가 위로했다.
"지난 밤, 김훈의《허송세월》을 읽다가
방우달의 《심심풀이 땅콩처럼 살리라 2》를 완독했다.
가슴으로 썼기에 쉽고 간략하면서도
인간미 넘치는, 부족함의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세상에 딸을 낳은 모든 부모처럼
나는 내 책들에게 정말로 미안하다.
더 많은 사랑이 필요함을 절실히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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