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詩

입가를 조용히 간지럽히고

野塔 방우달 시인 2014. 9. 18. 00:42

입가를 조용히 간지럽히고

 

방우달(시인)

 

초가을 햇볕을 쬐며

후평동 효자동 옛골목길을 걷네

감나무 대추나무는

주렁주렁 열매를 익히고

쪼그리고 앉은 분꽃은

까만 씨를 말려 보관했다가

내년에 대를 이으려고 하네

아내와 나는 귀중한 씨 몇 개만 달라고

분꽃에게 졸라서 얻어와

아파트 베란다에 놀러온 볕에게

잘 말려 달라 신세 한 번 졌네

며칠 후 시집 간 큰 딸이 세 살 짜리 아들과

고추 잠자리 잡으러 근린 공원으로 나왔는데

잠자리는 뵈지 않고

까만 분꽃 씨앗을 보더니

아들이 곱게 따서

하나 하나 제 엄마에게 준다고

춘천 제 엄마와 통화하는 소리를 들었네

거실에서 햇볕을 즐기던 나는

큰 우주 속의 작은 분꽃 씨 하나 만지작거리며

대물림의 신비를 캐고 또 묻고 있었는데

그 때 초가을 신선한 한 점 바람이

내 입가를 조용히 간지럽히고 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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