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코르 작품

나는 얼룩인가 무늬인가

野塔 방우달 시인 2011. 11. 22. 07:30

 

              나는 얼룩인가 무늬인가

                                                                         

                    

 

                                                                                   방우달(시인)

 

 

 

난사람, 든사람, 된사람

있어야 할 사람, 있으나마나한 사람, 없어야 할 사람

사람을 나누는 방법도 여러 가지다.

나는 얼룩, 얼룩 무늬,

무늬 같은 사람으로 나눈다.

그 기준은 제자리에 있는가의 여부다.

제자리에 있는 것은 무늬다.

제자리에 있으면 어울리고 아름답다.

반대로 아무리 아름답고 예쁘고

향기로워도 제자리에 있지 않으면

남의 자리를 빼앗아 앉으면 얼룩이다.

 

얼룩은 보기가 흉하다.

얼룩은 남에게 해를 끼치기 쉽다.

얼룩은 없는 것보다 못하다.

얼룩을 제거하려면 노력과 비용이 든다.

얼룩은 제거해도 흔적이 남는다.

 

자연에는 얼룩이 없다.

자연은 어디에서 보나 다 무늬다.

모두 제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만들어지지 않고 생긴대로 있기 때문이다.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바위 하나

모래 하나 얼마나 자연스러운가.

 

공원의 인조나무 벤취는 얼룩이다.

얼룩 위에 앉아 우리는 무늬를 본다.

놋그릇의 녹물은 얼룩이지만

잔잔한 호수의 작은 흔들림은 물 무늬다.

단체사진에서 어울리지 못하고

빼곡히 튀어나온 얼굴은 얼룩이다.

 

같은 사람에게도 얼룩인 부분이 있고

무늬인 부분이 있다.

얼룩무늬와 같은 사람이다.

얼룩과 무늬가

감춰져 있기도 하고 노출되어 있기도 하여

사람을 제대로 알기는 힘이 든다.

 

시간을 두고 사귀면서 관찰해 보면

근본을 속일 수는 없다. 같은 사람이라도

얼룩과 무늬의 비율에 따라 사람이 다르다.

 

어느 자리에 앉아도 무늬가 되는

낙엽 같은 것이 있고

어느 자리에 앉아도 얼룩이 되는

오줌지도 같은 것이 있지만

후천적으로 노력하면

상당부분 무늬가 될 수 있으리라.

적당히 세속적이고 적당히 야비하고

적당히 우아한 삶을 살기 위해

제자리를 의도적으로 벗어나는 사람이 있다.

얌체적인 사람이다.

자신의 이익만을 쫓는 사람이다.

 

우리는 모두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

제자리에서 제 역할을 다하면서

무늬가 되는 삶은

향기롭고 아름답고 행복하리라.

 

*<지갑을 던지는 나무>(방우달 지음. 정일출판사. 2000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