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코르 작품

스스로 크는 그릇

野塔 방우달 시인 2011. 11. 15. 06:00

 

                   스스로 크는 그릇

 

 

 

                                                                                            방우달(시인) 

 

 

어떤 인물을 두고

그릇이 크다 작다고 비유한다.

그릇이 크면 많이 담을 수 있기 때문이리라.

 

독에 물을 많이 부으면 독이 넘친다.

넘치지 않는 경우는 독이 샐 때이다.

그러나

들어오는 물만큼 몸집을 키우는

그릇이 있다면 넘치지 않으리라.

받는 만큼 소화시키면, 녹이면, 용해시키면,

 

사람의 마음은

크기가 결정되지 않은 그릇과 같다.

얼마든지 키울 수 있고 줄일 수 있다.

마음의 그릇은 스스로 크기를 결정할 수 있다.

 

조금만 칭찬하면 넘쳐버리는 사람이 있다.

격려하기 위해, 사정이 딱해서 조금 칭찬하면

자기가 잘 나서 그런 줄 안다. 조그만 그릇이다.

 

아무리 칭찬해도 우쭐해 하지 않고

더더욱 겸손하며 자신을 자랑하지 않고

자꾸만 깊어지는 그릇은 큰 그릇이다.

 

큰 그릇은 깊이를 짐작할 수 없다.

그런 사람에겐

무엇이나 자꾸 붓고 싶다.

내 모든 것을 담그고 싶다.

 

타인의 도움도 영향을 미치겠지만

마음의 그릇을 키우는 것은 자기 몫이다.

그릇이 크면서도 예쁘게 키우는 길은

타인 죽이기가 아니라 자기 죽이기이다.

내가 먼저 죽는 것이다.

먼저 죽으면 오래 산다.

자랑거리는 아무리 숨기고 숨겨도

칼날처럼 호주머니를 뚫고 나온다.

그래서 남들이 먼저 안다. 알아준다.

스스로를 자랑하면 추해진다. 말을

들어주는 사람은 그래 그래 하지만

그릇의 밑바닥이 얕음을 보고 만다.

밑이 보이는 그릇은 추하다.

 

자기 죽이기는

날마다 날마다 자기를 돌아보는 일이다.

겹가지가 나면 가지를 친다.

마음이 몹시 아프다.

먼지가 묻었으면 닦는다.

닦기는 마음이 닳지만 새살이 돋는다.

타인을 살리면 자기도 살지만

타인을 죽이면 자기도 죽는다.

 

아예 깨어지는 그릇은

넘치는 그릇보다도 훨씬 못났다.

크는 그릇, 넘치는 그릇, 깨지는 그릇

좋은 그릇의 선택이 나의 행복을 키운다.

 

*<지갑을 던지는 나무>(방우달 지음. 정일출판사. 2000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