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그래도 만수무강하세요!
방우달(시인)
역삼동驛三洞은
역이 세 개 있는 동네란 뜻이다.
족집게 같이 어떻게 오늘을 예측하고
지명을 역삼동이라 지었을까?
참으로 신기하다.
기흥이나 온양도 그런 류의 지명이다.
지하철 2호선 선릉역, 역삼역, 강남역이
역삼제1동 행정구역 안에 있다.
한 개의 행정동에 여러 개의 노선이 겹쳐 있어
역이 세 개 이상인 동은 있으나
한 개의 전철 노선이 한 개의 행정동에
역을 세 개나 두고 있는 동은
강남구의 역삼제1동 밖에 없을 것이다.
그만큼 행정구역이 넓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 역삼제1동에 1996년 3월 중순부터
2000년 8월 초순까지 동장을 지냈다.
강남구에서 가장 부자동네이면서 저소득층이
두 번째로 많은 특이한 동네이다.
빛과 어둠이 공존하고
상주 인구가 가장 많은 마을이다.
넓은 지역에다가 고소득층, 지식인층,
저소득층 혼재, 교통이 편리하여
청소, 교통, 환경, 세금, 저소득층 관리,
온라인 민원처리 등이 다른 동에 비해서 많고
업무처리 난이도가 매우 높아
근무하기 힘든 동이다.
따라서 직원들이 기피하는 부서 1위 동이다.
어느 덧 역삼제1동을 떠나온지
올해가 10년째 되는 해이다.
그 때 같이 힘들게 열심히 일하시던
그 당시 일흔이 훨씬 넘은
취로 할머니 몇 분이 기억에 남는다.
수소문 끝에 세 분은 돌아가시고
올해 89세인 김00 할머니가
혼자 살아 계시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 취로 할머니들은
그 당시에 천사 같으신 분들이었다.
가난 속에서도 성격이 밝고
긍정적이며 부지런하셨다.
그래서 나는 더욱 더 열심히
그들을 도우려고 노력해 왔다.
불우이웃돕기 운동을 펴거나
개인적으로 용돈도 좀 드리곤 했다.
내가 그 동을 떠나온 이 후로
그 분들에 대한 생각은 늘 갖고 있었지만
나의 승진문제가 잘 풀리지 않아
맘고생을 하는 바람에
그 분들을 찾아뵙지 못했다.
일요일인 어제 전화를 드리고
김 할머니 댁을 찾아갔다.
김 할머니는 오래된 연립주택
지하 단칸방에 홀로 사시며
여전히 밝고 맑은 모습에
곱게 세월을 맞이하고 보내고 계셨다.
귀도 밝으시고 음성도 초롱초롱하시다.
오랜시간 근무 당시에 묻지 못했던
가족사에 대한 얘기며
10년 동안 사신 말씀을 자세히 들었다.
저에 대한 소감도 많이 말씀해 주셨다.
"인생은 좋을 때도 있고 궂을 때도 있다.
항상 겸손하게 긍정적으로 살면 가난하더라도
사람 대접 받으며 살 것이다."
인생은 무엇이며 어떻게 살 것인가?
제 물음에 대한 김 할머니의 말씀이시다.
미리 준비한 명함과 소액의 용돈과 음료수를 드리고
무슨 일이 있으시면 꼭 전화주시라고 말씀드렸다.
대문 밖에서 기다리시다 날 껴안으시며 맞이해 주시더니
헤어질 때는 한참 동안 서서 손을 흐드시는 김 할머니
힘들고 외로우시더라도 만수무강하세요!
앞으로 가끔 찾아뵈어야겠다 다짐하면서
역삼역을 향하여 발걸음을 옮겼다.
올들어 가장 뜨거운 날씨였다는 것은
저녁 뉴스를 듣고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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