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승미 기자
- 승인 2023.03.13 00:01
삶의 지혜 담은 '처세시' 장르 만들어
시집 등 35권 출판, 춘천서만 18번째
다작 위해 주문 출판 방식(POD) 활용
자신이 겪는 일 모두를 한 편의 글로 만드는 시인이 있다.
길을 걷다 만난 풀꽃부터 30여년 공직생활에서 얻은 삶의 지혜까지 그의 경험을 담은 출간물만 30여권에 달한다. 최근에는 춘천에서의 은퇴생활을 담은 ‘소양강 상고대 환한 미소처럼’을 펴냈다.
다작의 주인공은 바로 춘천에 사는 방우달 시인이다. 방 시인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제 삶은 모든 것이 시가 된다”고 소회를 밝혔다.
방우달 시인은 경북 영천의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글쓰기를 좋아하던 그의 꿈은 부자가 되기 위한 직업이 아닌 시인이었다. 초등학생 때 우연히 보게 된 푸시킨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가 그에게 큰 울림을 줬기 때문이다.
방 시인은 “농촌 극빈자의 아들로 태어나 아무런 희망도 없었는데 푸시킨의 시를 보면서 용기와 희망을 얻게 됐다”며 “푸시킨처럼 좋은 시를 써서 나처럼 어려운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 제 꿈이 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생계를 위해 곧바로 시인이 될 수는 없었다. 서울시 7급 공무원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해 세 자녀를 키웠다. 하지만 생업을 유지하면서도 시를 놓지 않았고 1994년 ‘예술세계’에서 시 부문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34년만에 정년퇴직한 그는 오랜 꿈인 시에 다시 집중하기로 했다. 직장생활하면서 주말과 밤에 문학을 연구했지만,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생각에 좋아하는 곳에서 노년을 보내며 시를 공부하기로 했다. 그래서 택한 곳이 춘천이다.
자신의 생활권이었던 서울, 경기권과 접근성이 좋으면서도 대학병원이 두 곳이나 있는 곳. 무엇보다 각종 호수와 산 등 자연환경이 좋아 춘천을 택했다. 그렇게 춘천에 온 날이 2012년 3월, 올해로 꼭 11년이 됐다.
그는 “춘천 대학병원에서 못 고치는 병은 그냥 포기하겠다, 춘천을 떠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춘천에 왔다”며 “와보니 생각한 대로 너무 좋고 인심들도 훌륭해 잘 선택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가 현재까지 출간한 책은 모두 35권. 춘천에서 집필한 것만 해도 18권이 넘는다.
최근에는 은퇴 생활의 사색을 담은 ‘소양강 상고대 환한 미소처럼’과 ‘이 생각 저 생각 헛생각’ 시리즈 3편 등 4권을 펴냈다. ‘소양강 상고대⋯’ 제목 앞에는 팔미남의 춘천 은퇴 생활 사색 일기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팔미남’은 그가 자신을 설명하는 수식어다. 읽기, 걷기, 보기, 듣기, 사색하기, 명상하기, 말하기, 쓰기 등 여덟 가지에 미쳐있는 남자라는 뜻이다.
적은 은퇴 비용으로 최대한 효율성 있는 인생을 살고 싶다는 생각에 남은 삶은 여덟 가지에 미쳐 살겠노라 다짐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가 자신을 소개하는 또 다른 수식어는 ‘처세시인’이다.
그는 자신이 쓰는 시의 장르를 ‘처세시’라고 이름 붙였다. 이는 유년 시절 영향을 줬던 푸시킨과도 맞닿아있다. 나는 누구이고 어떻게 살 것인지, ‘삶’에 대한 시를 쓴다는 의미다. 서정시, 순수시, 자연시 등과 같은 여느 분류들과 달리 삶과 밀접한 시를 쓰고 이를 통해 남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겠다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이 때문에 그의 작품들은 한 편의 시보다는 좋은 글, 명언 등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그의 시는 국내외 이메일 구독자 수 400만명에 육박하는 ‘고도원의 아침편지’에 수차례 소개되기도 했다.
그는 30여권의 책을 내기까지 단 한 번도 지자체, 문화재단 등의 지원금의 힘을 빌리지 않았다고 했다. 책 한 권을 출간하는데 보통 300~500만원 정도의 비용이 들었는데 모두 자비로 충당했다.
“저는 공직생활을 했잖아요. 춘천시로 따지면 국장급 간부 공무원에 속하는 정도였죠. 그런데 더 어려운 상황에 있는 전업 시인들이 있으니까, 살면서 좋은 일도 못 하는데 기회를 뺏지 말자는 생각에 모두 자비로 했어요.”
자신도 아주 여유로운 상황은 아니었다.
수십권의 책을 출간했지만, 인세로 돌아오는 것은 거의 없었고 연금만으로는 계속해서 오르는 각종 비용을 내기도 빠듯했다. 그래서 그가 택한 방법이 ‘POD(Publish On Demand)’다. 주문 출판을 의미하는 것으로 출판사와 계약하고 수백권을 의무적으로 찍어내야 하는 기존 출판과 달리 주문이 발생할 때마다 실물 종이책을 만드는 방식이다.
이북(ebook)에도 도전해봤지만, 실물 책이 보고 싶다는 요구가 있어 선택한 방법으로 이번 책도 이 방식으로 만들었다.
방 시인은 다작의 이유가 오래 직장생활을 하면서 경험한 노하우나 노후를 잘 보내는 방법을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제가 시를 통해 삶의 희망과 용기를 얻었던 것처럼 다른 사람들에게도 제 글이 힘이 되길 바란다”며 “제가 좋은 책들을 출간하면 죽고 나서라도 이 사람이 어떻게 살았고 이렇게 좋은 작품을 남겼다는 사실이 남았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한승미 기자 singme@mstoday.co.kr]
[확인=윤수용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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