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코르 작품

'성인聖人 거미'

野塔 방우달 시인 2015. 8. 31. 08:00

'성인聖人 거미'

거미를 욕하지 말라
줄을 걸어 먹이를 잡아도
거미는 신사다

보이게 줄을 쳐놓고
눈이 먼 것들이나
재수 없이 걸린 놈들만 먹는다

줄을 피해서 갈 길이 있는데도
피하지 않거나
피하지 못하고
걸려든 놈만 잡아먹지
함정을 만들거나
속여서 꾀여서 잡아먹지는 않는다

야비하게 먹이를 구하지는 않는다
미리 예고를 해두고 기다리기 때문에
거미는 성인이다.



- 방우달의 《누워서 인생을 보다》 중에서 -

남을 잡아 먹더라도 신사도란 것이 있습니다.
어찌보면 먹이 사슬은 자연의 훌륭한 섭리입니다. 이 세상이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줄 때 기분 좋게 주고 먹을 때 감사하는 마음으로
꼭 필요한 최소량만 먹어야 합니다.
거미보다 못한 인간으로 떨어질까봐
날마다 나의 거미줄을 성찰합니다. 그러니까
아침 햇살 빛나는 거미줄에
영롱한 이슬이 조롱조롱 맺혀 제 목줄이 매우 무겁습니다만
행복한 나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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