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혼詩魂

[스크랩] 방우달 시인 새시집 `쬐끔만 더 우아하게`

野塔 방우달 시인 2012. 1. 13. 18:15

 

 

 

 

 

중견시인 방우달 시인의 새 시집 <쬐끔만 더 우아하게>이다.

작년 섣달 중순경에 방 시인으로부터 직접 우편으로 받은 귀한 선물이다.

내가 받은 방 시인의 시집으로는 두 번째 시집이다.

앞서 전작시집 <마음 풀고 가라, 다친다>도 고맙게 받아

집안 서가에 잘 꽂아두고 있다.

 

시인은 등단 이후 벌써 17번째 시집을 세상에 내놓고 있다.

대단한 열정이자 혼이 깃든 노작이 아닐수 없다.

 

글을 쓴다는 것, 그중에도 시를 쓴다는 것

 떠오른 시상을 결코 가볍게 토해내지 않고, 메모지에 때론 생각의 틀에 또다시 가둬뒀다

묵힐대로 묵혀 구증구포하는 산고의 고통으로

일궈낸 씨줄날줄의 시들은 자식 같고 생명 같으리라...

 

이런 귀한 시집 한권 선물 받는다는 것은 세상에 살면서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큰 기쁨이자 행복임을 알아야 할 터...

 

그럼에도 선물한 상대의 큰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바쁘다는 알량한 핑계로

이렇다할 감사의 뜻도 전하지 못한 건 참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오늘 퇴근하고 시인에게 사죄하는 마음으로 찬찬히 시집을 첫장부터 넘기며

시 하나하나를 정독했다.

 

다는 아니지만 시인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읽히는 것 같아 그제서야 마음이 놓이고 훈훈해진다.

 

방우달 시인을 안지는 햇수로 1년이 채 안되었다.

 그가 서울시 위생과장으로 근무하던 시절, 이것저것 서울시 동정을 취재하다

일로 만난 것이 첫 인연이다.

 

내가 아는 방 시인은 나이가 적은 아랫사람에게도 늘 겸손하고 존중해주는 천상 청빈한 양반의 모습이다.

평소 생활상이 짐작이 되는 그런 분...

 

가끔 들러보는 그의 블로그(다음=교과서에 없는 처세학)엔 늘 인자하시고 단아한 모습의 부인과 함께한 모습들로 예쁘게 채워져 있다.

 

이 시집 역시 그런 평소의 그의 소박하고 소탈한 일상의 모습들이 잔잔하게 수놓아져 있다.

 

시집에 소개된 시 몇편을 여기에 소개한다. 먼저 이 시집의 제목이자 대표시...

 

 

<쬐끔만 더 우아하게>

고상하고 기품이 있으며 아름답게

그렇게 우아하게 살기는 어렵지만

노숙인 김씨는

현재 제 삶이 우아하다고 생각한다

감사하다고 생각한다, 바라는 것이 있다면

쬐끔만 더 정말 쬐끔만 더

우아하게 살았으면 하고

밑이 시커먼 손톱을 쬐끔 내민다

흰 구름이 내려다보고 웃으며 흘러간다

김씨의 얼굴에 노숙하던 구름이 걷힌다

삶이 쬐끔 더 우아해지는 느낌이다

 

방 시인의 시는 어딘가 모르게 아이들의 맑은 정서를 대변하고 감싸안는 동시와 동요의 느낌이 난다.

그러면서 그속에서 어떤 철학책보다도 더 깊은 울림과 교훈을 던져주는 것이 특징이다. 그의 앞선 시집

<마음 풀고 가라, 다친다>의 느낌이 이 시 <쬐끔만 더 우아하게>에서도 같은 느낌으로 전달된다.

생떽쥐베리의 어린왕자 를 읽고 난후 드는 느낌이랄까...

 

 

<관리 차원>

밤 11시쯤이면

영락없이 아내로부터 전화가 온다

 

"관리 차원에서 전화합니다!"

 

믿지 못해서가 아님을 안다

안죽고 살아있는지

안전 사고는 없는지

혼자 올 수 있는지(술에 취해서)

바깥에 있는 남편이 걱정돼서다

 

어지간히 아내 속을 썩인 남편이지만

관리 차원이라?

30여 년을 직장에서 관리돼온 사람인데

여전히 행복한 관리를 당하네

 

 

평생을 직장에서 관리당한 시인은 또다시 압박해오는 부인의 관리가 싫지 않은 모양이다.

이것이 평범한 소시민의 속내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세상의 모든 남편들은 밖에서는 아내로부터 관리당한다는 사실을 

불평하듯 떠들면서 내심 그런 불편(?)한 관리가 곧 자신이 행복의 울타리 안에 놓인, 세상에 몇안되는 

꽃과 같은 존재임을 확인시켜주는 행복의 장치라는 사실에 은근한 자부심을 느끼는가 보다.

별수 없이 어린애 같은 사내들이란...

 

 

 

<관광과 여행>

풍경을 눈에 담으면

관광이고

풍경을 맘에 담으면

여행이다

 

인생은

관광이면서 여행이다

 

 

 

<고주망태>

슬픈 날, 아픈 날, 기쁜 날은

술잔보다 마음에 술이 먼저 닿는다

그렇게 마음이 먼저 취했던 날은

난 반드시 고주망태가 된다

 

어버이 날이다

언제부터인가

오늘은 고주망태되는 날이 되었다

 

 

 

<봄내, 春川으로 가는 길>

60년 살아온 삶을

바꾸어 걷기로 한다

 

봄내,

春川으로 가는 길은

흐르는 봄을

찾아 가는 길이고

티없이 맑은

청춘을 찾는 길이다

 

작은집에서 큰집으로

문명에서 자연으로

자만에서 겸손으로

웅변에서 침묵으로

탈을 벗고 맨얼굴로

과시에서 숨김으로

도피에서 은둔으로

증오에서 사랑으로

복수에서 용서로

소유에서 무소유로

순간에서 영원으로

 

서울을 벗어던지고

춘천을 갈아입는다

 

 

 

<섣달 그믐날>

어머니, 제가 잘못했습니다!

 

 

위 시중 <고주망태>와 마지막 시 <섣달 그믐날>에서는 묘한 동질감이 전율처럼 타고들어온다.

왜일까?! 아무래도 대한민국 모든 숫컷들은 일정한 나이가 들면 본능에 가깝게

부모에 대한 그리움과 죄책감으로부터 부자유스러워지는 것 같다...

 

 

현재 이 시집 <쬐끔만 더 우아하게>는 교보문고 추천도서(MD)로도 선정돼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한다.

시집이 갖는 장점은 짧은 시간에 어렵지않게 책 한권을 통독할 수 있고, 그 여운은 비교적 오래 간다는 것이다.

새해 벽두, 자신의 시간계획에 책읽기가 포함돼 있다면 먼저 시집 한권 사들고

책 읽는 재미를 붙여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천리길도 한걸음부터라고 시집 한권을 시작으로 에세이.산문집으로 예열한 후 대하소설에 이르는

책 읽기도 연초 세운 시간계획을 일년 내내 가져갈 수 있는 작은 테크닉이 될 수 있을 듯...

 

 

 

출처 : 모두 함께, 같이
글쓴이 : 포구기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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