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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아들에…며느리살이에…명퇴 남편에…‘찌드는 중년’ 아줌마는 괴롭다

野塔 방우달 시인 2011. 8. 2. 07:04

백수아들에…며느리살이에…명퇴 남편에…‘찌드는 중년’ 아줌마는 괴롭다

한겨레 | 입력 2011.08.01 21:30 | 누가 봤을까? 50대 여성, 울산




[한겨레] 지금의 아줌마들도 한때는 '우아한 중년'을 꿈꿨다. 자식들 시집·장가보내고 나면 남편과 단둘이 여행도 다니고, 손자·손녀 재롱이나 보면서 취미생활을 즐기는 여유로운 삶. 그러나 중년 아줌마들의 그런 꿈은 말 그대로 꿈일 뿐이다. 2011년 대한민국 50~60대 아줌마들의 상당수는 백수 자식 대신 돈을 벌고, 며느리 눈치 봐가며 손녀·손자 키우느라 등골이 휜다. 취직이나 결혼을 못한 자식 걱정에 밤잠을 설치고, 명예퇴직한 남편의 노후 고민까지 짊어지기 일쑤다. 힘겨운 일상에 한숨짓는 이들의 얘기를 들어봤다.

대졸 아들 취직 않고 빈둥
뒷바라지 위해 '돈벌이 전선'


#1

화장품 방문 판매원인 윤아무개(56)씨는 아들 생각만 하면 화가 치민다. 지방대를 나온 윤씨의 아들(29)은 1년7개월째 백수 신세다. 윤씨가 '취업전선'에 뛰어든 것은 취업준비하는 아들을 뒷바라지하기 위해서다. 윤씨는 1주일에 꼬박 5일을 일해 버는 100만원 남짓을 전부 아들한테 쓴다.

하지만 요즘 들어 윤씨는 아들이 취업을 할 의지가 없어 보여 답답하다. 입사원서도 내지 않고 그저 건성으로 도서관과 집을 오갈 뿐이다. 윤씨의 아들은 취업을 포기한 전형적인 '니트족'(NEET·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이다. 윤씨는 "언제까지 아들 대신 돈을 벌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옛날 같으면 부양받을 나이에 되레 자식 뒷바라지하느라 너무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윤씨처럼 다 큰 자식 대신 돈을 버는 엄마는 더이상 낯선 존재가 아니다. 통계청은 지난달, 올해 2분기 50대 여성의 고용률(취업인구비율)이 59.3%로 같은 기간 20대 남성(58.5%)과 20대 여성(59.2%)의 고용률을 모두 앞질렀다고 밝혀, 이런 현실을 확인해줬다.

결혼한 아들네 도로 집으로
손주 키우기·살림 고스란히


#2

결혼 2년차 아들을 둔 조아무개(59)씨는 석달 전부터 아들 부부와 함께 살고 있다. 결혼할 때 구한 아들 부부의 신혼집 주인이 전세금을 한꺼번에 5천만원이나 올려달라고 요구하자, 이를 감당할 수 없게 된 아들 부부가 아예 짐을 싸들고 부모님 집으로 들어와 버린 것이다.

겉으론 며느리가 '시집살이'를 시작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조씨가 '며느리살이'를 당하고 있다. 맞벌이인 며느리를 대신해 청소·빨래·식사준비를 하는 것은 기본이고, 손녀를 돌보는 것도 온전히 조씨의 몫이 됐다. 조씨는 "자식이니 나가라고 할 수도 없고, 다 늙어서 내 집에서 '식모살이'를 하려니 몸과 마음이 지친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결혼한 뒤 독립했다가 전세금과 육아 부담을 이기지 못해 다시 부모님 집으로 돌아오는 '도로 캥거루족'이 많아지면서, 조씨처럼 '며느리살이'를 하는 50~60대 아줌마들도 늘고 있다.

지난 31일 취업 포털 '잡코리아'가 남녀 직장인 52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결혼 후 같은 집 또는 한동네에서 부모님과 사는 것'에 찬성한다는 응답이 65.8%에 달했다. 응답자들은 찬성하는 이유로 '육아문제'(33.4%)와 '경제적 부담'(6.8%)을 주로 꼽아, 결혼 뒤에도 여전히 부모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보여줬다.

'방콕' 남편 탓 외출도 눈치
빠듯한 노후자금에 겹시름


#3

유아무개(55)씨의 남편은 2년 전에 명예퇴직을 당했다. 한 중견기업에서 30년 넘게 일하다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은 유씨의 남편은 최근까지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

유씨는 집에만 틀어박혀 있는 남편에게 매일 세끼 밥을 챙겨주느라 2년째 제대로 된 외출 한번 해본 적이 없다. 남편은 평소에도 변덕이 죽 끓듯 하는데다 가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화를 내곤 해 유씨는 하루하루가 가시방석에 앉은 것 같다고 했다.

노후준비도 제대로 못한 형편인데, 막내 아들은 아직 대학생이고 딸은 결혼을 앞두고 있어 앞으로 돈 들어갈 일을 생각하면 걱정이 태산이다. 유씨는 "우아한 중년은커녕 나이 50이 넘어 당장 먹고살 일이 아득하다"며 "가만히 앉아 퇴직금을 까먹다가는 더 늙어서 길거리로 나앉을 판"이라고 말했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