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위생과장인 방우달님이 쓴 <참다운 배신은 아름답다>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방 과장님은 1994년에 등단해서 15년간 작품활동을 해 온 시인이기도 합니다. 그동안 출간했던 13권의 책들이 서정적인 시와 수필들이었다면, 이번 책에는 처음으로 우리 사회와 공직사회에 대한 거침없는 쓴소리를 담았더군요.
그동안 공무원이라는 신분 때문에 하기 힘들었던 이야기들을 출판하기까지 내심 많은 고민이 있었으리라 짐작됩니다.
앞으로 남은 3년의 공직생활에 그 책의 내용이 안좋은 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하는 주변의 우려도 많았을 겁니다. 하지만 그는 그 때문에 책의 출간을 미루고 싶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는 책의 앞머리에 출간하기까지의 어려움을 담담하게 얘기하고 있습니다.
아내와 아이들 그리고 날 아껴주는 지인들이
현직에 있을 동안은 이 책을 내지 말라고
적극적으로 말렸습니다.
<참다운 배신은 아름답다>라는 글을 쓴 사람조차도
참다운 배신을 하기가 쉽지 않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랑하는 이들의 마음을 고맙게 받아들이면서
그들을 배신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지금 배신하지 않으면
평생 양심의 가책을 받으며 살 것 같기 때문입니다.
날마다 참다운 배신을 하며 아름답게 살겠습니다.
짧은 기간이지만 공직 생활을 경험한 저로서는, 31년 간이나 공직에 있었던 직업 공무원이 그런 용기 있는 결단을 내릴 수 있었다는 게 놀랍고 존경스럽기까지 합니다.
방 과장님은 이 책에서 여러 문제를 다루었습니다만, 특히 제가 관심 깊게 읽은 부분은 공직 생활의 애환과 승진 등 인사 문제의 불합리한 제도, 공직생활의 원칙과 신념에 관한 글들이었습니다. 그는 <영혼이 없는 공무원은 20%정도다>라는 수필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지난해 1월 초,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업무보고에서 국정홍보처 간부가 "우리는 영혼이 없는 공무원들"이라고 한 말이 한동안 장안의 화제가 되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인수위 부위원장이 "대한민국 공무원이 그래서 되겠느냐?"며 비난하자 국정홍보처장은 "그 말은 ‘관료는 영혼이 없다’고 한 막스 베버의 말을 인용한 것인데, 관료는 어느 정부에서나 그 정부의 철학에 따라 일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라고 해명했습니다. 그 뒤로 공무원 사회에서 '공무원은 영혼이 없다'라는 말이 유행이 된 모양입니다.
“공무원”이란 단어는 ‘공공의 업무를 수행하는 공복’이라는 본래의 뜻을 벗어나 부정적으로 추락한 단어입니다. ‘철밥통, 부정부패, 비능률, 무책임, 무소신, 복지부동’ 등은 공무원과 관련해서 가장 많이 쓰이는 단어들이 되어 왔습니다.
이러한 공무원의 영혼을 바로 잡기 위한 개혁이 역대 정부에서 나름대로 추진되어 왔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개혁은 장기적으로 추진되어야 성과를 볼 수 있는 과제입니다. 영국이나 미국 등 비교적 성공했다고 평가 받는 나라에서는 정권의 교체와 관계없이 지속적이고 일관성 있는 이념과 전략에 토대를 두고 개혁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특정 정파의 이익보다 국민의 이익을 위해 직무를 수행하기 위한 ‘정치적 중립 의무’는 공무원의 영혼을 지키는 방어막으로서 중요한 기능을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동안 우리나라의 정부는 공무원의 영혼을 충분히 살펴 왔다고 평가하기 어렵습니다. "영혼이 없다’는 공무원의 말을 비난하면서 실제로 공무원들이 그렇게 되도록 분위기를 조성해 온 것은 아닌지 살펴 볼 일입니다.
게다가 지금은 부처통폐합, 구조조정, 공무원 감축, 대규모 인사 이동 등 공무원들의 영혼을 불안에 떨게 만드는 정책들이 시행되고 있습니다.
당연히 공직 사회에는 권력의 눈치를 보고, 권력의 입맛에 맞추어 정책을 바꾸고, 나아가서는 권력이 원하는 바를 미리 눈치껏 알아서 시행해 주는 공무원들이 생겨나기 마련입니다. 이런 공무원들에 대해 방우달님은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시경(詩經)』의「대아(大雅)·증민(蒸民)편」에 주나라 선왕 때의 재상인 중산보(仲山甫)를 칭송한 노래가 나옵니다.
자기 몸을 잘 붙들어(以保其身)
밤낮으로 몸을 바쳐
임금님을 섬기네”
“명철보신(明哲保身)”이란 숙어의 원전이 된 노래입니다. 나라를 위해 신명을 바쳐 일하는 관료의 모습을 그린 이 단어의 뜻 또한, 일찍부터 권력의 눈치를 보며 자기 몸을 지킨다는 뜻으로 추락해버렸습니다.
그렇게 추락한 세태를 개탄한 다산 정약용은 당대의 석학인 김매순에게 보낸 편지에서 “명철보신이라는 네 글자가 오늘날 세상을 썩게 하는 으뜸가는 부적이 되고 말았습니다.”하고 한탄했습니다.
이 질문에 대해 방우달님은 참으로 용기있게 자신의 소신을 밝히고 있습니다.
끝까지 반골 시인 공무원으로 남을 것을 다짐한다.
영혼이 없다고 하는 사회에서 꼭 영혼을 지키는 공무원이 될 것이다.
"날마다 참다운 배신을 하겠다."고 한 방우달님의 배신이 왜 이리 아름답고, 소중하고, 값지게 느껴지는지요?
이 분과 같은 바른 원칙과 신념을 가진 참다운 공복이 오래오래 공직에서 일을 하고, 승진도 하고, 모범적인 공무원 상으로 칭송도 받아 "명철보신"하는 사회가 되기를 꿈꾸어 봅니다.
*김명곤 : 영화배우(서편제 아버지역), 전 문화관광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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