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얼굴들 잊고 삽니다
방우달(시인)
자기 전에 가끔 내가 만난 얼굴들을 떠올려 봅니다. 날마
다 봐도 보고 싶은 얼굴들 웃으며 손짓하며 한 그룹 지나갑
니다. 마치 올림픽 개막식 때 선수들이 본부석을 향하여 손
을 흔들며 지나가듯이.
이어서 미워하던 얼굴들, 울며 찡그리며 한 그룹 지나갑니
다. 미리 낌새를 차린듯한 소 떼가 도살장으로 끌려가듯이.
보고 싶지도 밉지도 않은 얼굴들, 덤덤한 표정으로 한 그
룹 지나갑니다. 얼굴을 서로 아는 것만도 크게 다행인 듯이.
얼굴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 얼굴들, 잊혀진 사람들이 한
그룹 지나갑니다. 무심코 지나치는 어느 날 종로 바닥 군중
인 듯이.
아아, 구름 떼처럼 많은 얼굴들, 나는 이 밤에 잊고 삽니
다.
어둠이여!
방우달 지음
<작은 숲 큰 행복>(도서출판 여름. 2005년)에서
* 2009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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