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다운 배신은 아름답다

시집 내고 나눠주는 일, 부끄럽다

野塔 방우달 시인 2007. 8. 4. 10:03

시집 내고 나눠주는 일, 부끄럽다

 

방우달(시인)

 

이름이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시인은

시집 내기도 어렵지만 시집 나눠주기도 힘들다.

시인들이 대부분 자비自費로 시집을 발간하는데,

시를 쓰는 사람치고 경제적으로 넉넉한 사람이 별로 없다.

그 이유는 반드시 그렇지는 않지만 시인들의 대부분은

성품이 순수하고 강직하고 정의롭기 때문에

혼탁한 현실과 부귀영화와는 타협하지 않는다.

 

그러니 사회에 적응하기 어렵고

더군다나 돈을 잘 벌기는 더욱 힘들다.

직장에서도 남들만큼 승진이 빠르지 않다.

약삭 빠르지 못하고 자신의 업적을 자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빠른 승진이나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는

돌아가는 세상의 톱니바퀴에 최소한

적당히, 대충, 삐그덕거리지 않게 맞추어야 하는데

시인들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자비로 시집을 발간할 경우 현물로 보통 500권에서 700권 정도의

시집을 받는데 그것을 나눠주는 것도 돈이 들고 힘든 일이다.

우편물로 발송할 경우 일일이 봉투작업을 해야 하고 우체국에 가거나

택배회사를 불러야 하니 그 비용도 만만치 않다.

무명의 가난한 시인들은 이래저래 슬프고 고통스럽고 더 빈곤해진다.

 

시집은 대부분 아는 문인이나

친인척, 친구, 직장 동료들에게 좋은 말로 선물함으로써 소비한다.

시집을 받는 상대방이 부담을 느끼는 경우도 있어 선물을 하더라도

받을 사람 선택을 신중하게 해야 한다.

그렇게 나눠줄 때 시인의 대인관계나 대상자 선정의 엄격성 정도에 따라

시집이 모자라는 사람도 있고 남는 사람도 있다.

막말로 하면 시집 소비도 하나의 짐이고 고통이다. 

 

 나는 그렇게 선물하고 남는 시집을 가방에 하루 두 세 권 넣고 다니다가

출퇴근시 좋은 일을 하는 사람, 차 안에서 독서를 열심히 하는 사람,

식당 등에서 자신의 일에 아름다울 정도로 최선을 다하는 사람,

다음에 어디에서고 꼭 다시 만나고픈 사람, 인상이 참 좋은 사람,

산행이나 포장마차에서 우연히 얘기하다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에게 선물한다.

그런 사람을 만나지 못하면

오랫동안 가방 속에서 시집은 답답하게 갇혀 있게 된다. 

 

시인 중에는 부자도 있다. 시집을 추가 발간하여 거창한 출판 기념회를 열고

아는 사람은 모두 초청하여 시집을 나눠 준다.

이렇게 하여 출판비용, 출판기념회 식대 등 비용까지도 충당하고 남는 시인도 있다.

그런 시인은 대개 시가 익지도 못하고 인품도 그렇게 존경 받을 인물이 못되는 경우가 많다.

나는 부끄럽게도 11 권의 책을 냈지만 아직 한번도 출판기념회를 갖지 못했다.

남들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고,

또 자신을 과시하고픈 마음이 조금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왜 시를 쓰고

팔리지도 않고 나눠주기도 힘든 시집을 계속 발간하는가?

그 이유는 시인마다 시대마다 다를 수 있다.

나는 시를 쓰는 것이 고통의 과정을 건너 정신의 희열, 쾌락의 단계로

나를 끌어 올려놓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썼으니 정리해야 하고

정리해서 묶어 놓아야 더 높은 다음 단계로 올라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시집을 내는 일과 나눠주기는 부끄럽기 그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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