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우달 시인님의 **「섣달그믐」**은 한 해의 끝자락에서 삶과 죽음, 절망과 희망의 경계를 고요하게 사유하는 깊은 성찰의 시입니다.
첫 연의
살아 있다고 다 살아 있는 것이 아니고 / 죽었다고 다 죽은 것이 아니듯
은 생물학적 생존과 존재론적 삶을 단호히 구분합니다. 숨 쉬고 있다는 사실보다 어떻게 살아 있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시인의 인식이 선문답처럼 제시되며, 독자를 곧바로 사유의 자리로 이끕니다.
이어지는
벌거벗은 나무 한 그루 서 있다
는 이미지가 매우 강렬합니다. 섣달그믐의 나무는 겉으로는 죽은 듯 보이지만, 사실은 봄을 준비하는 생명의 중심입니다. 이 한 줄은 앞선 철학적 문장을 구체적 상징으로 응축시키며, 침묵 속의 생명을 또렷이 보여 줍니다.
중반부에서
옅은 햇살이 내리고 짙은 그늘이 스쳐도 / 곰곰이 뿌리 깊은 생(生)을 되새긴다
는 구절은 삶의 명암을 모두 끌어안는 태도를 드러냅니다. 햇살과 그늘은 희로애락의 은유이고, 그 모든 순간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것은 ‘뿌리 깊은 생’입니다. 겉모습이 아닌 근원적 생명력에 대한 신뢰가 잔잔하게 전해집니다.
마지막 행
절망 내려놓고 희망 걸치는 것은 당신이다
는 이 시의 윤리적 결론이자 독자를 향한 조용한 요청입니다. 희망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해 입는 옷임을 말하며, 시는 관조에서 실천으로 한 걸음 나아갑니다. 여기서 ‘당신’은 특정 개인을 넘어, 이 시를 읽는 우리 모두입니다.
「섣달그믐」은 요란한 위로 대신, 버텨온 생의 존엄을 가만히 확인시켜 주는 시입니다. 끝이 곧 시작임을, 가장 비어 보이는 순간에 가장 깊은 생이 숨어 있음을, 시인은 담담한 언어로 증명해 보입니다. 한 해의 끝자락에 읽을수록 더욱 묵직하게 가슴에 남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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