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에 없는 처세학

아내를 위한 작은 이벤트 하나

野塔 방우달 시인 2007. 10. 23. 14:47

                                             * 사랑의 옥수수 뻥튀기 전달식 장면*

 

 

일상이란 늘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합니다.

무미건조합니다.

생활에 무엇이든지 변화를 줘야 지루하지도 않고 즐겁고  행복해집니다.

행복이란 가만히 기다린다고 오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찾아나서야 합니다. 아니면 만들어 내야 합니다.

 

어릴 때 일기를 어떻게 썼지요?

 "아침에 일어나 세수하고 밥먹고 학교가서 공부하고 돌아와서 친구들과 놀다가 숙제를 하고

잤다."

이렇게 날마다 쓰니까 선생님께서 "그건 일기가 아니다. 날마다 똑 같잖아!" 야단 맞고는

날마다 무슨 일이든 만들지 않았습니까? 혹은 거짓말로 일기를 쓰기도 하고 말입니다.

 

일부러라도 무슨 일을 만들어 내야 합니다.

직장생활도 그렇고 부모와 자식간에도 부부간에도 맨날 똑 같으면 관심도 줄어들고

웃을 일이 없지 않겠어요?

그래서 이벤트가 필요합니다.

이벤트는 삶의 훌륭한 활력소입니다.

 

나는 아내와 자식들에게 가끔씩 깜짝 쇼를 합니다.

비용이 적게 들면서 긴장을 주거나 재치가 넘치거나 재미나는 쇼는 훌륭한 이벤트입니다.

 

지난 시월 초하룻날입니다.

아직은 여름 기운이 남아 있어서 밤공기도 덥습니다.

조금 빨리 걸으면 등에 빰이 밸 정도 입니다.

 

저녁 모임에서 소주 한 잔을 하고 밤 10시경 야탑역에 내립니다.

조금 걸어오면 트럭위에서 날마다 옥수수 뻥튀기를 파는 아저씨를 만납니다.

평소에 아내는 2000원짜리 한 두 봉지를 삽니다.

옥수수 뻥튀기가 치매와 비만 예방에 좋다는 것을 알고

아내는 옥수수 뻥튀기를 좋아하고 잘 먹습니다.

뻥튀기를 보는 순간 나는 객기를 부리고픈 생각이 듭니다.

 

아이들 키만한 커다란 뻥튀기에 눈길이 번쩍하며 멎습니다.

"사장님, 이거 얼맙니까?" 말을 거니까

"25000원인데 22000원에 드리겠습니다." 라고 답하시길래

"아, 20000원에 파시려고 2000원을 더 붙여 놓으셨군요!" 라고 하니 아저씨가 웃으십니다.

 

술김에 장난끼 어린 행동에 단돈 2000원을 깎아서 뭣하겠습니까만

에누리는 깍는 재미가 있지요.

"무거워서 들고 가시기 힘드실텐데..."  하시며 돈을 앞지갑에 넣으십니다.

만만치가 않습니다. 손으로 잡거나 들고 가기엔 너무 무겁습니다.

나는 양복 차림에 가방까지 메고 있었습니다.

가방은 왼쪽 어깨에 메고 옥수수 뻥튀기는 오른쪽 어깨 위로 올렸지요.

고개를 왼쪽으로 젖히고 걷는 모양새를 상상해 보십시오. 얼마나 꼴사납습니까!

 

집에까지 약 10분을 그렇게 걸어가니 이마에 땀이 많이 흘렀지요.

아내가 기뻐할 것을 영상으로 그리며 걷는 동안 나는 웃음이 나오고

즐겁기도 하고 행복하기도 했습니다.

 

집에 도착해서 벨을 눌렀습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가마니만한 옥수수 뻥튀기 자루를 어깨에 메고 들어서는

남편의 모습을 보고 아내가 깜짝 놀랍니다.

"여기 있다. 먹어라!" 하고 던지듯이 하면 이벤트가 안됩니다.

"당신을 생각하면서 야탑역에서부터 메고 왔어.

 드실 때마다 날 생각하면서 잘 드시라." 면서 전달식을 하겠다고 긴급 제안을 합니다.

아내는 잠옷차림에 화장끼 없는 얼굴로 무슨 사진이냐고 하지요.

 

옥수수 뻥튀기 자루를 세워서도 한 컷 눕혀서도 한 컷 찍습니다.

찍는 아이들도 웃고 아내도 폭소가 터지고 나도 근엄한 얼굴에 약간 입이 벌어집니다.

아내의 저 폭소는 돈 주고 살 수도 없는 건강과 사랑의 폭탄입니다.

 

아내는 남편으로부터 받은 사랑의 선물 옥수수 뻥튀기를

봉지에 담아서 이웃들과 나누어 먹으며 이벤트 얘기를 합니다.

얘기의 꽃은 계속 번져 나갑니다.

 

쇼를 하면 반복되는 무미건조한 일상이 큰 행복으로 바뀝니다.

쇼를 하면 사랑과 건강이 날마다 뻥튀기 되면서 커지고 깊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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