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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속에서 피어나는 생명의 꽃을 위하여- 유형! 남쪽으로 부터 올라온 여름 장마가 어제까지도 추근추근 비를 뿌리더니 오늘은 언제 그랬느냐 싶게 맑은 하늘입니다. 고층 아파트의 숲속에서 일부러 쳐다보지 않으면 있는 지 조차도 모르게 하루에 한 번도 올려다 보지 못하던 하늘이었는데 고개를 쳐들고 보니 어쩜 그렇게 하늘이 맑은지요? 지금 나는 뒷산을 오르고 있습니다. 왜인지 아세요? 하늘을 보다 잘 보기 위해서랍니다. 막힘없이 바라볼 수 있는 곳에서 마음껏 맑고 너른 하늘을 보고 싶어서입니다. 유형! 아파트 옆으로 난 작은 길을 따라 조금만 걸어 올라가면 뒷산으로 갈 수 있답니다. 일 때문이라지만 사실은 게을러서 운동삼아 오를 수 있는 이 길 조차 자주 가지 못하는 것을 스스로도 부끄러워 하고 있습니다만 어쩝니까 그만큼 답답한 사람인 것을요. 유형! 벌써 유형이 원치 않는 병으로 고생을 하고 있는 것이 1년이나 되었군요. 처음엔 하도 황망하고 믿기지도 않아 부정하고 싶은 마음 뿐이었지만 현실은 현실이기에 지금은 유형이 받아들이고 있는 현실만큼 나 또한 유형의 아픔들을 인정하고 있답니다. 하기야 유형이 겪는 아픔과 고통의 만분 일이라도 내가 제대로 느낄 수 있겠으며, 또 그렇게 느낀다 한들 유형에게 그것이 어떤 도움이 되겠습니까만 마음으로나마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편안하게 살아가는 내가 죄송스러워 견딜 수가 없답니다. 유형! 처음 유형이 응급실로 들어갔다가 병실로 옮겨지고, 그리고 절망적인 고비를 몇번이고 넘길 때 그 아픔을 견뎌 내던 모습은 차라리 엄숙하고 숭고해 보이기까지 했답니다. 나 역시 네 번의 수술을 받았던 몸, 아픔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에겐 결코 이해될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나로써 유형의 순간 순간 승리는 아침 햇살 보다도 찬란해 보였습니다. 항암제를 투여 받고, 방사선 치료를 받으면서도 사는 것이 고통이라고 느끼기 앞서 지금 이 순간 내가 살아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은총이요, 축복인가를 생각한다던 마음을 헤아려 봅니다. 유형! 형도 기억 하시겠지요? 그렇게 열심히, 그리고 아름답게 삶을 꾸려가던 강형과 경형을요. 우리의 곁을 떠난 지 몇 해가 되고보니 벌써 우리의 가슴에서 얼마큼씩은 잊혀지고 지워져 가고 있는 것 같지 않나요? 결국 아픔도 지금 겪고 있는 아픔이 가장 큰 아픔이겠고, 그 아픔 속에서도 목숨이 붙어있는 이 순간이 더더욱 소중한 것 아니겠습니까. 유형! 난치니, 불치니 해서 우리의 마음을 어둡게 하는 이런 병고들이 그토록 맑고 밝게 삶을 사는 유형같은 사람들에게 왜 닥쳐 올까 때론 화가 나기도 했지만 오히려 유형처럼 당사자들이 더 의연하고 담대하게 하루 하루를 이겨 나가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 것인가 새삼 다시 생각해 보게 됩니다. 유형! 형이 이번에 발표한 '사슴뿔'을 읽었습니다. '영광의 상징' 같은 사슴의 뿔이 위험을 만나 막상 살기 위해 도망쳐야 할 땐 넝쿨에 걸리게 하는 장애물이 된다는 유형의 자조는 다시 한번 현재의 삶을 돌아보게 했습니다. 유형!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만 나와도 병실의 벽 색깔이 달라 보이고, 창문으로 내다 보이는 하늘이 달라 보이고, 한 번 숨을 들이쉴 때마다 속깊이 스며드는 공기의 맛이 달디 달던 것을 기억 하시나요. 산다는 것은 지금 이 순간을 어떤 눈으로 보고, 어떻게 느끼느냐에 따라 공포나 불안이 되기도 하고, 평화와 감사가 되기도 하는 것 아닐런지요. 이번에 방우달 시인이 낸 세번째 시집 '테헤란로의 이슬'을 보셨지요? 86편의 무덤 연작시 모음인데 우리가 어둡고 닫혀있는 공간으로만 생각했던 무덤의 이미지가 더없이 밝고 열린 느낌으로 다가오지 않던가요. '무덤이 하늘 강물에 안기면 파아란 별이 되고, 하늘의 별이 땅강물에 안기면 영혼의 은하로 흐릅니다.' 유형! 어제는 스물 두살의 백혈병 여대생이 동생의 골수를 이식 받아 새 생명을 찾는 '병원 24시'라는 T.V 프로를 보았습니다. 그 절절한 고통의 순간에 아빠도 엄마도 문밖에 서 있을 수 밖에 없는 현실 속에서 그녀는 자신의 생명을 위해 골수를 제공한 동생을 생각 하더군요. 문득 아픔이란 인간이 가장 인간다워질 수 있는 순간에 이르게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언젠가 강원도 길에서 뾰족하기 이를데 없는 바위 위에서 이름 모를 풀꽃 한 송이가 피어있는 걸 본 적이 있습니다. 뿌리를 내릴만한 흙은 고사하고, 영양이 될만한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 그곳에서 어떻게 뿌리를 내리고 무엇으로 꽃을 피워낼 수 있었는지 내 상식으론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고, 더구나 가볍게 스쳐가는 바람 조차도 그에겐 폭풍처럼 느껴질 것 같은데 용케도 보란듯 생명을 키우고 있는 모습은 실로 위대함이었습니다. 한라산 정상의 바위에 핀다는 돌매화나 백두산의 바위틈에서 산다는 노란 바위돌꽃도 바위에 붙어 피는 꽃들이라고 하는데 절망에서 희망을 꽃피우는 일처럼 생명이란 그토록 모질기도 하고 억척스러운 것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유형! 지금 이순간에도 각종 난치병으로 유형처럼 생명의 싸움을 벌이고 있는 우리의 형제들을 생각해 봅니다. 도저히 생명의 기운을 불러 일으킬 수 없을 것 같은 곳에서도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는 저 돌매화나 바위돌꽃처럼 우리는 어쩌면 절망 속에서 희망의 꽃을 피워내야 할 사명과 책임을 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희망!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 희망보다 빛나는 것은 없을 것입니다. 세상의 어떤 무엇보다도 밝고 빛날 희망, 우린 아픔 속에서도 그 희망을 붙들고 내일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 아닙니까? 도종환 시인의 '암병동'이란 시가 생각 납니다. 희망이 있는 싸움은 행복 하여라 믿음이 있는 싸움은 행복 하여라 온 세상이 암울한 어둠 뿐일 때도 우리는 온 몸 던져 싸우거늘 희망이 있는 싸움은 진실로 행복하여라' 그렇습니다. 절망에서 벗어나려 몸부림 치는 것이 인간이요, 어떠한 순간에도 삶의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 인간이라면 그것은 본능이기 전에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가장 값진 은총의 능력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이 순간, 우리의 아픔은 곧 희망을 건져 올리는 일일 것이며, 내가 겪는 이 아픔 역시 또 다른 희망을 만들어 가는 작업일 수 있음입니다. 오래전 무슨 병인지도 모른 채 죽어갔던 많은 사람들로 인하여 오늘의 우리가 그러한 병에서 해방될 수 있듯이 하나님의 뜻에 인간의 진보가 도구가 되면 아름다운 축복이 되는 사실을 우린 알고 있지 않습니까. 겸손하게 순명하며 위로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아래로는 희망의 꽃을 피워내며 나를 향해 펼쳐내는 그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지혜와 도움을 힘입어 오늘을, 그리고 내일을 이겨 나갈 때 저 돌매화 보다도 바위돌꽃 보다도 더 신비롭고 튼실한 생명의 꽃을 피워낼 수 있을 것입니다.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을 이룰 때가 있으며(전 3:1),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오 힘이시니 환난날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시46:1).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사 43:2) . 유형! 들리십니까?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너를 도우리라 하시는 음성을요. 유난히 추운 겨울 후에 맞는 찬란한 봄을 생각해 보셨나요. 하나님의 뜻은 유형이 이 아픔과 고통을 보다 장하게 이겨내는 것일 겝니다. 유형의 가슴에선 지금 기적의 씨앗이 발아하고 있습니다. 유형은 이제 그 가슴 속에서 탐스러운 생명의 꽃을 피워낼 차례입니다. 유형! 고통을 통하여 더욱 가까이 다가 오시는 분, 아픔을 통하여 더욱 크게 사랑을 펴시는 분, 그 사랑이 생명의 작은 불씨를 타오르는 큰 불길로 피워 내실 형과 형처럼 아픔을 겪고 있는 이들을 향한 가없는 사랑임을 잊지 마세요. 승리 하소서. <건강과생명>1998년 9월호.특집/난치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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