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
방우달(시인)
은퇴생활의 새로운 터전 내 아파트는
유럽형이라 길다랗게 늘어진 남향집인데
복도는 낮이라도 불을 켜지 않으면 어둡다
최근에 말문을 조금 튼 세살배기 손자가
어느 날 한 달만에 외갓집에 와서는
"아, 터널이다!" 라고 뛰어가며 외친다
외손자의 그 한 마디에
그 아이의 외갓집은 긴 터널까지 지닌
부잣집의 반열에 올려져서
나는 비로소 기분이 묘한 벼락부자가 된다
손자는 인생터널도 외갓집에 오듯 맞이하리라